박상희

엄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내가 눈을 뜨니 사방이 깜깜했다. 변변한 시계 하나 없는 형편이라 그때가 한밤중인지 새벽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이웃마을 관두산 골짜기에 있는 송호 마을로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멀리 출타 중이었다. 아무리 어른이라 해도 엄마 혼자 모를 찌러가기에는 밤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우리 집은 이른 봄에 모판에 볍씨를 뿌렸지만 잘 자라지 못해 모가 부족하게 되었다. 이웃집에서 모내기를 끝내고 남은 모를 얻어다가 심고 있었다. 그런데 이웃마을 송호에서 모가 많이 남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날밤내로 모를 가져가지 않으면 모판을 쟁기로 갈아엎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날마다 품앗이로 모내기 약속이 이미 정해져있던 엄마는 그 밤이 아니면 시간이 없었다. 날이 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엄마는 리어카에 나를 싣고 그곳으로 갔다. 이따금씩 리어카가 돌이나 자갈에 채여 덜커덩거렸다. 리어카에 앉아있던 나는 엉덩이가 아프기도 했지만 덜커덩거리는 그 소리에 놀라 오금을 조렸다. 무서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리어카에 가만있게 하고 엄마는 남의 논에 들어가 정신없이 모를 찌고 있었다. 사방은 여전히 깜깜했다. 두 손을 마주잡고 리어카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개구리울음소리가 깊은 골짜기를 울려 퍼졌다가 다시 울림이 되어 되돌아왔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철렁했다. 리어카에 모를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날은 새지 않았다.

그 다음날, 십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한참을 뛰다가 공기놀이를 했다. 먼지 나는 신작로길 옆에서 옹기종기 쭈그리고 앉았다. 둥글둥글하고 모양이 비슷한 조약돌 다섯 개를 먼저 골라냈다. 흙 밭에서 그 돌멩이를 가지고 점수놀이를 했다. 다섯 알을 가지고 한 알 집기, 두알 집기, 세알과 나머지 한 알 집기, 네 알 집기, 다섯 알 손등 위에 뒤집기의 순서로 노는 방법이다. 다섯 개의 공기를 손등 위에 올려놓고 뒤집기에 성공한 알의 수로 승부를 결정한다. 점수가 많은 편은 점수가 낮은 편의 손목을 잡고 손가락으로 철석 철석 때렸다. 그러면 팔목이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한바탕 그렇게 놀고 나면 우리들 손톱사이엔 흙과 먼지가 틀어박혀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공기놀이가 시들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갈치조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보리밥에 짠지가 전부인 도시락을 먹었으나 이미 먹은 것은 소화가 되 버렸다.

빨리 집에 가서 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뛰어갔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큰집이 모내기 하는 날이었다. 어떻게나 반갑던지 쏜살같이 달려갔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등에 메고 달리는데 필통에서 연필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양은 도시락 속의 반찬그릇과 수저, 젓가락 소리도 같이 호흡을 맞췄다. 큰엄마는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며 하얀 쌀밥위에 팥이 수를 놓은 듯 한 밥을 푸고 있었다. 작은엄마는 식욕을 자극하는 갈치조림을 나누고 옆집 아줌마는 금방 담근 듯 한 김치를 빨갛게 물든 손으로 옮기고 있었다.

“큰엄마!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큰엄마는 하얀 쌀밥위에 팥이 뿌려진 밥과 구수한 갈치조림을 대뜸 줄줄 알았다. 못밥엔 꼭 팥을 넣고 했다. 그것은 팥이 액운과 재앙을 없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팥은 피돌기를 원활하게 해주고 부종을 막아주고 이뇨효과까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큰엄마는 아주 냉정했다.

“오메! 뭔 소리여, 너희들은 저쪽 가서 놀다가 일꾼들이 밥을 다 먹고 나면 오너라!”

참 야속했다. 평소에 큰엄마는 나에게 무엇이든지 다 주는 아량이 넓은 사람이었다. 제삿날에도 얼마나 후하게 대해줬는지 모른다. 다른 아이에겐 과일도 반쪽만 주었지만 나에게는 귀하던 배도 통째로 주었다. 전을 부쳐도 나에게는 가장 큰 걸로 주지 않았던가. 대신 다른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서 다 먹고 가라고 했다. 그런 큰엄마가 저쪽으로 가라고 큰소리를 치니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고 했던가. 이런 속담이 있을 만큼 이 때는 일손도 부족하고 모든 사람이 바쁘다는 말이다. 일하는 일꾼 먼저 밥을 준다는 말에 나는 바지를 돌돌 말아 올리고 논으로 들어갔다. 개구리가 개골 개골거리고 물뱀이 머리를 쳐들었다. 깜짝 놀라 논에서 뛰어나왔는데 시꺼먼 거머리가 어느새 종아리에 붙어 피를 빨아먹었다. 큰아버지가 손바닥으로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를 때려도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거머리가 무서워서 엉엉 울어댔다. 빨간 피가 흐르는 것을 보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큰엄마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팥밥과 길치조림을 내게 갖다 주었다. 갈치는 간곳이 없고 감자부스러기만 갈치냄새를 머금은 채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도 갈치국물에 밥을 비벼먹는 못밥은 꿀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