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군대에 입대한지 삼 개월, 그 날은 일주일의 고된 산악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왔다. 뉴스에서는 연일 마약 밀수범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몹시 피곤한 날들이었다. 취침에 들기 위해 막 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김현승! 지금즉시 중대장 사무실로 나와라. 긴급 상황이다.”

현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본인을 부르는 소리를 잘못 들었나 의심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분명 현승을 찾는 게 틀림없었다. 주섬주섬 군복을 챙겨 입고 달려 나갔다. 사무실엔 중대장과 대대장까지 나와 있었다.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영문을 몰라하는 현승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조금 의아했지만 지은 죄가 없었으므로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귀관이 김현승인가?”

“네, 이병, 김현승입니다.”

“박은아를 아는가?”

“모릅니다.”

무서운 얼굴로 중대장은 편지 한 통을 현승 앞에 내놓았다. 아주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누구에게서 온 편지인지 출처를 물었다. 현승은 알 수가 없었다. 겉봉에 쓰여진 주소는 낯선 글씨체였고 보내온 사람의 이름도 전혀 생소했다.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편지를 할 수 있겠느냐고 중대장이 윽박질렀지만 현승은 정말 박은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귀관, 정말 생각이 안나나?”

“전혀 생각이 안 납니다.”

“귀관, 요즘같이 중차대한 시점에 계속 발 뼘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영창을 보낼 수도 있단 말이야! 똑바로 말하라!”

현승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갑자기 오줌까지 찔끔거렸다.

초등학교 때 짝꿍부터 아는 여자의 이름을 하나씩 되새겨 보았지만 아는 이름이 아니었다. 몇 번을 물었지만 모른다고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현승 앞에서 편지봉투를 흔들어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중대장이 보는 앞에서 그 편지를 뜯기로 하였다. 봉투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쫘르르 쫘르르 소리가 났다. 현승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중대장은 혹시 마약으로 의심하는 게 아닌가.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고 현승이 진짜 마약에 연루된 기분이었다. 중대장은 편지를 흔들며 아주 험악한 얼굴로 변해 버렸다.

현승은 그 날 저녁 마약밀수에 관한 뉴스가 나왔던 게 번개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 속에는 아이들이나 좋아함직한 과자가 들어 있었다. 입 속에 넣으면 바로 녹으면서 톡톡 소리를 내는 그런 과자였다. 일명 톡톡 캔디였다.

아, 그때서야 현승은 생각이 났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엄마친구라는 것을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웃에 사는 엄마 친구가 현승을 무척 귀여워하였다. 초등학교 때, 아줌마 딸과 같은 반이었을 때는 반 친구들을 모두 불러다 자장면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과자파티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무엇인가 만들기를 좋아하여 이면지를 이용하여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예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줌마 딸이 입는 옷은 그녀가 손으로 직접 떠서 만들어준 옷이 대부분이었다. 하얀 레이스 실로 원피스를 떠 주고 웃옷과 바지도 만들어 주었다. 언젠가는 현승의 옷을 떠서 선물하여 그걸 안 입으려고 엄마와 실랑이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술렁술렁 구멍이 뚫린 그 옷을 입는 것이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레이스 옷은 여자가 입는 건데 현승에게 입으라니 난감하였다. 그렇게 사이좋은 이웃으로 살면서 엄마와 친분이 깊었다.

현승은 입대 며칠 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술 먹은 날이 많았다. 마지막 날, 그날도 밤늦게 서야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엄마 친구인 아줌마를 만났다. 입대한다고 했더니 서운하다며 꼭 편지를 하라고 하였다. 군인들은 초콜릿을 좋아한다며 편지에 넣어서 답장을 하겠다고 말이다. 현승은 그 다음날 군 입대를 하였고 부대배치가 되었을 때 고마운 아줌마에게 잊지 않고 안부편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편지 한 통이 현승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중대장까지 긴장하고 편지 한 통에 놀란 것은 그때 나라에선 마약밀수 하는 자들이 있어서 비상사태였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대장도 입 속에 톡톡 캔디를 넣으며 빙긋 웃는 것이었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라고 하니 중대장은 더욱 배를 잡고 웃었다. 너무도 어이없게 당한 현승은 한 마디 하였다.

“중대장님, 그것이 마약입니까?”

“하하하, 귀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마약은 처음 먹어 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