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조교수 박 정 석

조선시대 나주 인근 사람들은 일상에서는 물론, 복결병이나 술병에 걸렸을때도 삭힌 홍어로 국을 끓여 먹어 몸에 스며든 나쁜 기운을 없앨만큼 삭힌 홍어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렇듯 몸에 좋고 향도 독특한 삭힌 홍어는 지금도 다양한 음식과 어울려 소비되고 있는데, 홍어가 탁주와 어우러지면 홍탁(洪濁)이 되고, 홍어에 돼지수육과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삼합(三合)이 된다. 또한 삭힌 홍어의 내장을 주재료로 하여 보리 싹과 무를 넣고 끓이면 맵고 쌉싸래한 홍어애국이 된다.

홍탁, 삼합, 홍어애국 등을 통해 삭힌 홍어를 맛본 작가들은 그 체험을 “맵고 지리한 맛, 남도의 그로테스크한 맛, 톡 쏘는 아릿한 맛”,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 “홍탁 삼합의 도도한 취훙은 어떤 음식도 따를 수 없는 홍어문화의 절정”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 같은 문학적 표현들은 홍어요리를 찾는 관광객 혹은 외지인들에게 홍어란 바로 ‘이런 맛’ 때문에 먹고 ‘이런 맛’을 느낄 수 있어야만 홍어를 소비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처럼 각인시키고 있다.

실제로 영산포는 1970년대까지 홍어의 최종 소비처였다. 흑산도 인근도서를 비롯하여 멀리 백령도 대청도 근해에서 잡힌 홍어는 영산포로 운반되어, 이곳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팔려나갔다.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올라오면서 삭혀진 홍어는 영산포를 삭힌(숙성한) 홍어의 본산지이자 소비지로 부상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삭힌 홍어는 돼지고기, 김치와 어우러져 ‘삼합’이라는 독특한 음식으로 창출되었으며 막걸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홍탁’이 되어 영산포 고유의 음식문화로 자리매김 되었다. 즉, 영산포로 대표되는 영산강 유역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삭힌 홍어’라는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음식을 개발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도 ‘흑산도 홍어’를 입에 달고 산다. 당연히 흑산도를 홍어문화의 본산지로 안다. 그렇지만 홍어 식도락 문화의 본향은 흑산도가 아니라 영산포(榮山浦)다. 흑산도가 원생산지라면 영산포는 최종 가공처라고나 할까. 잡힌 홍어들이 배에 실려 영산강 뱃길을 따라 1주일여를 올라와 옛 남도의 물류 거점이었던 영산포에 닻을 내리면 어느새 홍어는 ‘푸욱’ 발효되어 예의 ‘썩은 홍어’가 되고 만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먼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이에 자연 발효돼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연출하는 것이다.

홍어 요리는 ‘홍탁삼합’이라고 해서 “자연 발효돼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연출하는” 홍어에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함께 싼 보쌈을 막걸리 안주로 먹는 것을 일품으로 친다. 그래서 묵은 김치와 돼지고기를 곁들인 ‘썩은 홍어’ 보쌈을 안주 삼아 탁주 한 사발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야 소위 ‘풍류’를 아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요컨대, 홍어 요리는 홍어를 먹는 ‘맛’이 아니라 먹는 방식을 즐길 줄 아는 ‘멋’에서 그 진수를 찾는다고 할 수 있다. 홍어를 삭힘으로써 “홍어 식도락 문화의 본향은 흑산도가 아니라 영산포”가 되는 것이다. 영산포가 ‘삭힌’ 홍어의 본고장이라는 점은 영산포의 홍어 요리가 일찍부터 흑산도로 이주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영산포에서는 싱싱한 것이 아닌 삭힌 홍어의 맛을 다른 지역의 홍어 요리와 변별적인 특징으로 내세운다.

특히 수입산 홍어가 들어오면서 영산포는 삭힌 홍어라는 특정한 조리 방식을 내세워 다른 지역의 홍어요리와 차별화하여 숙성 홍어를 상품화 하고있다. 영산포에서는 칠레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홍어를 수입하고 있지만, 홍어를 수입한 원산지보다는 그것을 가공해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영산포’라는 지역정체성이 결부되어 있다. 즉, 영산포는 ‘탈지역화’ 되어 수입된 홍어를 발효하여 삭힌 홍어로 만들어서 이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재정주’ 시키고 있다. 따라서 최근 영산포의 삭힌 홍어의 상품화는 지구화의 또 다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외국산 홍어가 수입된 시기는 1960년대 말이지만 품질이 떨어져 가오리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1981년 동원수산(주)이 미국산 홍어 110톤을 반입하였다. 이것이 외국산 홍어 수입의 시초이다. 1980년대부터 북한산 홍어들이 중국을 거쳐 국내에 반입되기 시작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어획량 감소와 채산성 악화로 중국산 및 북한산 홍어 수입이 중단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원양회사들이 1990년부터 포클랜드, 뉴질랜드,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지로 출어하면서 외국산 홍어들이 다른 어획물들과 함께 국내로 반입되기 시작하였다. 국내업체들이 1995년도부터 홍어를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수입산 홍어가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1997년부터 홍어 수입이 완전 개방되면서 수입산 홍어가 급증하였다. 수입 초기에는 주로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에서 홍어가 집중적으로 들어오다가 점차 미국, 캐나다 등지로 확대되었다.

수입산 홍어는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로 이전에는 홍어를 먹지 않았거나 먹었지만 가격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홍어 소비시장으로 끌어 들였다. 수입산 홍어가 국내의 홍어 소비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늘어난 수요는 다시 공급 증대를 유발시켜 홍어 소비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대량으로 수입한 홍어는 냉동시설과 택배업의 발달로 인해 전국적으로 소비시장을 확대하였다. 특히 대형 백화점과 마트에서 소량으로 포장된 숙성 홍어를 진열하고 판매함으로써 일반인들의 소비욕구를 자극하였다. 수입산 홍어가 대량으로 들어오고 홍어판매 시장이 유통업체와 결합되면서 홍어가 일종의 ‘패스트푸드’처럼 규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홍어는 특정 지역 소비의 일상음식 혹은 잔치음식에서 벗어나 전국 어디에서 언제라도 접할 수 있는 ‘상품화’된 음식이 되었다.

영산포는 최근 들어 숙성 홍어의 생산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나주 지역에서 홍어는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나주시문화원에서 1997년도 발행한 『내 고향 나주의 특산물 한마당』과 2001년에 발간한 『영산강 유역의 중심 나주의 특산물』에서 홍어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2004년 나주시문화원에서 발간한 『나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향토)음식 계발과 상품화 방안 연구』에 나주의 전통(향토)음식을 장류, 젓갈류, 김치류, 장아찌류, 해조류로 분류하고 기타류에 비로소 ‘홍어애 보리국’이 ‘애저’, ‘나주장터비빔밥’, ‘나주곰탕’과 함께 제시된다. 그리고 같은 문헌의 「나주전통음식 중 서민용 음식의 표준조리법과 계절별 상차림에 따른 식단구성」항목의 겨울식단 요리에 ‘홍어애 보리국’과 ‘홍어찜’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삭힌 홍어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널리 유포되면서 홍어요리는 지역의 토속음식 혹은 ‘문화’ 음식에서 웰빙 음식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