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고전소설의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니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 논리를 따르자면, 기껏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열여섯 살짜리 심청이 몸을 던지는 것이 ‘선’이란 것이다. 고전소설에서 도덕에 대한 이해는 그토록 얄팍하단 말인가? 사랑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춘향을 구원하는 것이 결국은 ‘암행어사’라는 판타지였다니, 이 역시 허무맹랑하지 않은가? 한 편 한 편 서로 다른 고민과 숨결을 지닌 그 많은 고전소설들에 권선징악이라는 ‘계몽의 스티커’를 붙여버렸던 것은 창피했던 봉건을 뛰어 넘어 황급히 근대로 가고자 했던 우리 사회의 치열한 자기갱신의 부산물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무리 폭력적이고, 무지한 일이었다 할지라도 바로 그런 독서의 방식 자체가 우리의 고전 읽기의 출발점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선 곳이 결승점이 아니라 출발점이었음을 깨달았으니 이제 ‘다시 읽기’를 시도할 차례다.”
-프롤로그 중에서

《전(傳)을 범하다》 제목부터 도발의 욕망을 내뿜는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안다고 하는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홍길동전〉과 함께, 귀에 설다 싶은 〈김원전〉, 〈채봉감별곡〉, 〈최낭전〉처럼 다소 낯선 작품까지 13편의 ‘전(傳)’을 폭넓게 넘나든다.

저자 이정원은 고전소설을 읽는 통념을 권선징악(勸善懲惡) 코드라고 규정한 뒤 이 틀로만 고전을 읽는 건 “폭력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춘향의 사랑과 심청의 효행에 드리운 도덕의 폭력과 협잡, 이 모든 더러운 지배이데올로기의 공격과 이에 몸부림치는 예술의 응전을 권선징악이라는 말로 감추고 있다”며 그가 보기에 권선징악은 고전소설에 덧씌워진 위선이라며 이를 벗어 던지라고 말한다.

이러다 보니 저자의 〈장화홍련전〉 다시 읽기는 장화와 홍련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계모를 위한 변론이 되고, 〈심청전〉 읽기는 ‘효’라는 ‘선’을 표방한 윤리를 걷어내고 ‘잔혹한 심청 살인사건’의 진정한 배후를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저자의 ‘전(傳)’ 뒤집어 읽기는 가히 전방위적인데, ‘적서 철폐, 신분 철폐의 영웅’으로 자리매김 된 홍길동을 율도국을 침략한 뒤 그 땅에 조선과 비슷한 신분제 국가를 세워 왕이 되고 적서 철폐 제도를 이식한 남루한 주인공으로 격하한다. 〈전우치전〉에서는 엄숙한 도덕이나 정의를 위해 고심하기보다는 왕이건 누구건 미운 놈들을 골탕 먹이는 전우치 캐릭터의 핵심을 ‘유치함’으로 설명한 뒤 그 유치함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페르소나’라고 이야기 한다. 특히 〈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출두’로 춘향을 구했다는 이도령에 대한 그의 비판은 신랄하다. 이도령은 춘향의 사랑을 믿은 연인, 그 반체제적 사랑의 동지라기보다는 춘향의 육체를 탐한 권력자, 이기적인 욕정의 사대부 남성으로 폄훼시킨다.

저자는 고전소설의 특징 중의 하나인 권선징악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고전에 도사린 예리한 현실비판을 묻어버리고자 하는 기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권선징악이라는 허울을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고 한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처럼, 저자는 계몽 근대가 주입한 고지식한 해석과 그를 고착시킨 우리문학 교육에 반박하며 “과연 한 번이라도 우리 옛 소설을 제대로 감상해본 적이 있는가” 묻는다. 그는 “새로운 스토리 찾기에 혈안이 된 전 세계의 문화 산업계는 앞 다투어 동·서양의 고전을 파헤치는데, 정작 국내 독자들이 수백 년 변모해온 우리 고전소설의 잔혹하고 서글픈, 발칙하고 유쾌한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해 아쉬웠다”며 이 책의 집필동기를 설명한다.

이 책이 시도하는 전(傳에 대한 재해석은 어쩌면 너무나도 점잖게만 읽어왔던 우리 옛 소설의 속내를 드러내면서 실상 다르지 않은 현대인의 모순과 탐욕, 정치와 폭력을 생생하게 재발견하게 해준다.

저자는 “고전은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변주할 수 있는 콘텐츠의 보고인데, 너무 틀에 박힌 방식으로 읽는 게 아쉬워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