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일전 고향엘 갔다. 막연한 그리움이 내 방황을 불러들인 것. 고향의 5, 6월은 정신없이 우거지고 있었다. 저 거칠 것이 없는 계절 곁을 지나자니 나 또한 숨이 가빠온다. 계절은 절정을 잘도 오르는데 나는 멋쩍은 국외자가 되어 고향 주변이나 어정거리고 있다. 일순 시간이 흐름을 멈춰 서고 한가한 생각만 하늘의 흰 구름이 되어 고요히 떠 있다.

지금은 헐려버린 옛 집터로 들어선다. 감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아니 백목련, 골단초, 서향, 적모란… 모두모두 무성한 이파리를 부채 삼아 하늘거리고 있다. 우거지다 보니 저들도 신열을 식히는 것일 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발길을 잡아끌었던 이 나그네의 근원 모를 그리움을 완벽히 가려주는 것 같았다. 신록은 때를 가르치면서 흐름을 지시하지만 도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냥 표정을 보여주고 기질을 연출할 뿐이다. 자연이 인간을 향해 던지는 저 늠렬한 메시지 앞에서 시력을 회복하고,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한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게 없고 흐르지 않는 게 없겠다. 단단한 바위도 선녀들의 장삼자락에 닳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인간은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들이 모여 살 집을 짓는다. 그 인연의 한 자리에 엄위하듯 서 있는 저들 수목들이 눈물겹도록 든든하다. 핑그르, 눈물이 고여 든다. 그간의 세월은 떠도는 구름에 진배없었다. 멋쩍은 마음에 냇가로 나왔다. 멱 감고 밤고기 잡던 이 갱변, 잡풀들이 세상모르게 점령해 버렸다. 공깃돌을 던진다. 마른 공터로 누워있는 지금의 이 폐허가 더 없이 미안하다.

나는 도망치고 싶다. 찾지 못할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 무성한 시간, 강물 같은 그리움, 백마고지처럼 까진 등성이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고향산천이 내미는 눈물겨운 배려, 병풍도 되고, 울타리도 되고, 누우면 마음 편한 잠자리도 된다. 수목들에게 고향집터나 산마루, 앞냇가, 논밭뙈기 모두모두 맡기고 망명객처럼 빠져 나왔다. 빌딩 숲 사이를 헤치며, 또다시 송충이처럼 솔잎 갉아먹고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