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20년도 넘은 일이다.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국 사람의 조급증을 꼬집듯이 표현한 일이 있다. 그는 한국이 좋아서 한국여자와 결혼도 했고 한국을 살피고 연구하여 저서까지 출판한 지한 인사였다. 그가 신문에다 썼던 한국 사람의 조급증이란 다름 아닌 우리네 국토에 산재한 식물들의 기질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한국인에게 매사에 참을성이 적고 ‘빨리빨리’나 ‘새치기’문화가 일상화된 것은 잎도 나기 전에 개화한 식물들의 생리현상을 닮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에는 이처럼 잎 먼저 꽃 피는 식물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잎 나기 전에 꽃 먼저 피는 산야

미상불 봄이 되면 산야에는 갖가지 꽃이 핀다. 겨우내 움츠린 대지 위에 음산한 산안개를 열고 팝콘 덩어리 같은 산 벚꽃들이 줄창나게 피어난다. 그 뿐이 아니다. 한국의 산야 어디든 다투듯이 개화하는 매화, 개나리, 복숭아, 살구꽃…… 등속은 잎도 나기 전에 꽃 먼저 피겠다고 부지런을 떤다. 지표면에 밀고나온 화살촉 같은 새싹들은 아직 연두 빛인데 한쪽에는 꽃이 피고 다른 한쪽에선 ‘꽃샘추위’라 이름 붙인 춘설이 내리고 이래서 한국의 봄은 자유방임주의처럼 자못 혼란스럽다.

문득 조급한 한국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제 세상은 남국의 일기가 열리면서 하루가 다르게 만화방창 우거지고 횡단보도를 뛰다시피 걷던 그 조급한 사람들은 더더욱 바빠지겠다 싶다. 한국 사람들이 지닌 조급증은 그간 한국 사람들이 더 비판적이었다. 허나 생각해 보면 한국 사람에게 조급증은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여겨진다.

요즘은 웰빙이니 슬로시티니 하면서 바삐 돌아가는 삶을 반성하고 생활 속의 여유가 유난히도 강조되는 추세지만 조급증이나 빨리빨리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이만한 한국이 가능했을 것인가. 혜민 스님이 쓴 『멈추면 보이는 것들』이란 에세이집이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것도 바삐 사는 우리네 삶에 대한 반성문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일반까지 지금이 바로 대단한 과도기다. 몹쓸 것들이 무더기로 쓸려나가면서 정신 차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있다.

상당 세월이 흘렀지만 필자가 일본에서 일 년쯤 지내다 온 일이 있다. 일본이야 거리상으로는 딴 나라 같지 않는 가까운 이웃이어서 민족감정만 아니면 이질감이 그리 크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 그때 그곳에서 일본인 교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품떼기로 일을 맡기면 죽어버릴까 싶어 못 시키겠고 일당이면 구렁이가 담 넘어가는 것을 보는 편이 낫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사람이면 일주일에 할 수 있는 일을 품떼기로 맡기면 죽을 둥 살둥 하루 밤낮에 끝내버리고 일당으로 일을 주면 미적지근하게 한 달이 가도 끝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교수는 덧붙여가며 더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가서는 요령만 알면 쇼핑하기가 편하다 했다. 그러면서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주인인지 종업원인지를 식별하는 일이 바로 그 ‘요령’이라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 더 물었더니 종업원은 물건을 팔아도 안 팔아도 월급을 받으니까 적당히 파는데 주인은 저 물건이 저 값이면 분명히 손해가 날 것 같은 데도 손님의 손에 쥐어 주듯이 팔아버린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 LA 등지에서 우리 교민들이 흑인의 총을 맞고 희생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들이 현실처럼 다가왔다. 미국에서 우리 교민들은 일단 정착하면 핫도그가게나 세탁소, 수퍼마켓 등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쪽 사회에서 그 같은 일은 흑인들 차지의 생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흑인들은 일하고 노는 시간이 구분되어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가게 문을 한번 열었다하면 24시간을 불 켜놓고 그야말로 노는 날 없이 영업을 하는 통에 고객 상대에서 밀린 흑인들이 불안한 생계를 타개하기 위해 권총을 빼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