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필자가 일본 교토(京都)에서 생활하던 때이니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필자는 전철을 타고 숙소와 학교를 오가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오가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교토는 우리로 치면 경주(慶州)에 견줄만한 일본의 옛 수도이다. 어쩌면 경주보다 더한 역사성을 자랑하는 도시인지 모른다.

이 나라는 도쿄에서 교토를 갈 때 상경한다고 할 정도이니 교토에 대한 대접사가 어떠한지는 짐작될 것이다. 그러니까 으들에게 도시의 크기가 역사성이나 자존심의 크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허나 규모로는 지역인구가 160만 정도이니 광주광역시와 겨룰만하다. 그런데 이 도시의 지하철은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보다 요금이 비쌌다. 하루는 역무원을 붙들고 연유를 물었다. 역무원의 대답은 “다른 도시의 지하철은 삽과 곡괭이로 팠지만 이곳 교토는 붓으로 팠기에 다른 도시의 전철에 비해 조금 비싸다” 고 하였다.

매장문재는 바람 앞의 촛불신세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왔다. 내 질문을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역무원의 답변은 능란했다. 교토에서의 토목 공사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유물이 나올지 모르니까 공사비에 상관없이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써가며 공사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에서 영산강은 모습이 바뀐 강이 되었다. 물론 여기에 오기까지는 환경단체 등 여러 사람들의 우려 섞인 반대도 많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시시비비는 접어두기로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보도한 일이지만 이 강의 개발로 주변에 묻혀있는 문화재가 가부간에 제쳐 지고 말았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들 강역을 파헤치고 뒤집어서 강의 생태 환경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 사업의 현장에서 포크레인이나 브르도쟈가 투입되면서 강역은 마구잡이로 뭉개졌다. 우리의 관심과 우려 속에 보호구역이 축소되면서 매장 문화재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지정 문화재 보호를 위한 관련법에는 공사구간 500m 이내는 유물 출토에 대비한 보호구역으로 하고 각종 개발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행했던 공사 지침에는 강 양쪽 제방과 제방 사이인 제외지(堤外地)만 사업영역으로 정하고 이 범위내의 문화재만 보호하겠다고 했었다. 몇 개의 문화재 연구기관이 지표조사로 확인한 영산강 유역의 매장문화재는 그 품목과 가짓수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만큼 많았다.

우선 제국 마한의 수수께끼부터가 영산강 유역에 잠자고 있다. 이어서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이 강이 담아온 역사는 지나온 세월에 비례하여 그 필요성이 배가 된다. 그러나 함부로 펼친 개발과정이어서 이에서 발생한 자연파괴는 참으로 심각했다. 막말로 파괴된 자연은 몇 십 년만 인내하면 복원될 수 있다. 허나 한번 파괴된 문화재는 그 복구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장개석이 대륙에서 도망 나오면서 문화재만 바리바리 싣고 나왔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필자는 벌써부터 영산강에서 출토한 유물들로 대형박물관이 지어졌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사를 서두르지 않고 책임 있는 지표조사 뒤에 책임 있는 출토가 제대로 시행되고 이후에 영산강 살리기 사업이 진행되었어야 했었다. 우리의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다.

영산강을 살리는 사업은 이전의 강과 비교할 때 거듭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병색 짙은 영산강이 건강미 넘치는 물빛 웃음으로 흐를 수만 있다면. 흘러서 옛날 그대로의 낭만과 영광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우리의 걱정은 들녘에 춤사위가 넘실대는 풍요와 노래가 되리라.

곡괭이 대신 붓으로 캐낸 문화재

새삼스럽지만 나주는 포대기속의 젖먹이 아이고 영산강은 어머니의 품안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자리처럼 적시며 흐르는 영고성쇠의 증인이다. 나주가 소경(小京)이라는 말은 지형이나 지리적 중요성이 밑 받쳐진 말이다. 그러나 바다와 들녘의 풍부한 물산 때문에 시련과 수난이 겹쳤던 역사적 아이러니가 영산강 강변을 더 큰 무지와 무관심속에 가두고 말았다. 강이 살아나 햇빛 속에 몸을 드러내는 시간을 당하여 문화유적은 바스러지고 뭉개졌다면 이보다 큰 손실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