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가이더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시드니에 550만, 멜버른에 400만이면 이 두 도시에 나라의 반 가까운 인구가 몰려 있으면서 30만의 소도시 캠버라가 수도인 나라, 일찌감치 多민족, 多풍습, 多종교의 국가로 출발하여 천주교, 기독교가 70%를 웃돌지만 소수의 타종교와도 충돌 없이 생활하고 다문화의 체질 다지기가 지금까지 이어 내려온 이 나라 최상의 생존방식이었다.

Nepean River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가졌다. 말이 강이지 시드니海의 짠물이 드나들고 강물은 고요한 거울처럼 평화롭게 누워 있었다. 돗자리 위에 펼쳐진 야채샐러드, 고추, 돼지고기, 된장, 미역국에 숙주나물, 배추김치에 부추까지…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가 따로 없었다.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야외에서 바베큐 식사를 마치고 약간의 산책길에서 ‘나 잡아봐라’ 식으로 날지 않고 뛰어 다니는 까마귀 놈들을 만났다.

행선지를 옮겨서 가이더의 설명은 이어졌다. 수입한 두뇌만으로 노벨상이 8개에다 총42개에서 13개의 대학이 세계 100위권에 진입해 있다니 서울대마저 100대 대학에 드느니 마느니로 시끄러운 우리에게는 부러운 일이었다.

공립의 경우는 전문대까지를 국가에서 학비 없이 가르쳐 준다 한다. 심장이나 피부 분야는 단연 세계 제일이며 발달한 예방의학 덕분에 비만한 사람들은 지천인 데 고혈압과 심장질환이 적은 건강 선진국이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내가 누군데’의 따위의 특권의식은 제로, 아이는 낳자마자 출산비용 1000만원에 검사부터 출산까지 나라가 책임지고 지원한다.

상대적 빈곤감이나 박탈감이 없으니 가난한 자가 부자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보다 부러웠다. 그리 보니 이 나라의 총독관저에는 게양된 국기 아래 연락병 하나만 달랑 배치된 상태였다. 이 나라에서 총독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평범하게 지낸다 한다.

시드니의 서쪽으로 100km쯤에 위치한, 호주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리는 대협곡, 블루마운틴에 도착했다. 급변하는 일기 따라 풍경마저 제각각이어서 세계의 풍경화가들이 즐겨 찾는 일망무제의 절경이었다. 주요 관광 포인트로는 세 자매봉(Three Sisters)과  에코 포인트(Echo Point), 여기에다 오솔길과 대협곡에 야생 조류 및 갖가지 식물군 등등 주워섬길 것이 많다보니, 일행들의 시야는 광각화 되고 다투듯이 저마다 찬탄 일색이다.

철판에는 다음의 문장이 새겨져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Jamison Valley - Queen Elizabath Lookout Her Most Gracious Majesty Viewed The Jamison Valley From This Lookout During Her Visit on 12th Feburary 1954.

하늘색, 공기색, 숲색이 모두 다 푸르다하여 명명된 블루마운틴은 천상의 자연이 어우러진 거대 정원이었다. 52℃ 경사에 'Katoomba Scenic Railway'이라는 바이크레일을 따라 수직승강을 반복하는 탄광촌 협궤열차를 타고 자연터널만 80m가 넘는 협곡을 따라가면서 지구의 막창자 꼬리까지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단층협곡과 시루떡 내지는 살코기의 단면을 저며 낸 것 같은 지형에다 이 나라에선 유일하게 물이 떨어진다는 ‘카툰바’(이 나라 말로 ‘폭포’를 의미)라는 폭포 앞에 닿았다. 진귀한 수종의 정글에서 키 큰 장한(壯漢)같은 풍채의 고사리나무(Fern Tree)를 만났다. 수령 250년에다 수고(樹高)가 12m를 넘는 팔 벌린 용 오르기 직전의 ‘고살님’이라며 가이더가 웃었다.

세계 최대의 그것도 양질의 석탄매장지라는 이곳은 제국주의자의 채찍과 폭압에 원주민들의 잔혹한 비애의 역사가 또 다른 탄층으로 잠들어 있다. 무수히 많은 유칼리투스木(Eucalytus Oreades)을 현장에서 보았다. 여러 특이체질이어서 134m까지 자라는 놈도 있다는 이 수종은 우리로 보면 소나무 같은 이 나라의 상징목이었다.

순간 즐겁게 사는 웰빙만이 최대의 생활목표라는 이 나라의 자연환경이 새삼 청결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나 자신부터가 “지구의 보약, 녹색을 많이 먹자, 지구와 인간의 공생을 위해!”라 다짐한 일이 있었다. 우선순위에서 보면 선진국의 ‘선진’(先進)이란 것도 많은 재화나 강력한 무기보다 ‘청결’ 그 자체임을 마음 깊이 짚어본 때가 있었다. 그래, 녹색과 청결이 이 나라의 일상이 되어있는 현실을 이 나라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다. 범죄율 최저에 사건사고도 경미하다는 시드니 시가지는 교통경찰 또한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