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발표한 그녀의 첫 장편소설의 제목이 바로 오지리와 관련한『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다. 이야기는 절망 속에 있는 서른 살 두 여자의 희망 찾기이다.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면, 두 사람의 여주인공인 은이와 채옥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오지리라는 마을에서 함께 자랐다. 여기에 지주 집안의 또래 아들인 상훈을 두고 서로 미묘한 경쟁관계가 된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였던 상훈의 아버지는 토지개혁을 피할 묘수로 소유한 땅의 일부를 채옥의 아버지에게 팔아치운다. 하지만 평소 어수룩한 채옥의 아버지는 후일에 그 땅을 빼앗겨버린다.

 

이유는 등기를 해놓지 않은 상태로 방치하듯 그냥 두었던 게 빌미가 된 것이다. 채옥의 아버지는 상훈이네에 대해 원한을 품는다. 당연한 일이다. 딸 채옥은 아버지의 지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수와 다름없는 집안의 상훈을 좋아한다. 상훈 역시도 채옥을 좋아한다. 곡성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한편으로 은이의 아버지는 상훈이네 집안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그러함에도 은이는 은이 나름대로 상훈을 사랑한다.

 

그렇게 상훈이라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채옥이와 은이는 기구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채옥은 지방대학에 입학해 자취를 하던 중 기현이라는 불량배에게 강간을 당해 임신이 되고, 원치 않은 아이를 낳으면서 나락의 길로 떨어진다. 이로 상훈에 대한 채옥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꺾이게 된다. 한편, 은이는 은이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노동자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이다. 어느 날 대학에 들어갔던 상훈이 위장취업자가 되어 은이 앞에 나타난다. 상훈은 아버지라는 핏줄에 대한 분노 또는 반항심으로 투쟁적인 운동권학생이 됨으로써 되갚아주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상훈에게는 한때 자기 집 머슴이었던 은이네 아버지에 대한 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기억으로 인해 은이가 처한 불행을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어 은이와 결혼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이 그러한 결혼이 순탄한 것일까. 되레 온전하지 못한 불행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공선옥의 소설『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은 서른 살이 되어 서로의 운명에 처한 은이와 채옥이 십여 년 만에 고향 오지리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채옥은 불량배 기현의 행패를 못 견디는 가운데 아이를 데리고 뛰쳐나와 깊게 병이든 아버지를 수발하며 하루하루 힘겨운 날들을 보낸다.

 

한편 은이는 은이대로 남편인 상훈의 아이를 가진 홀몸으로 시댁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채옥과 은이는 이제는 지난날 서로의 경쟁 관계가 아닌, 같은 상처와 마음을 함께 나누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깊은 관계가 된다. 이러던 중 채옥은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장터의 국밥집 겸 색싯집에 일을 나가기로 마음 한다. 그런 와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뜬다. 반면에 은이는 시어머니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는다.

 

시어머니는 외아들 상훈이 자기 집 머슴의 딸과 결혼한 사실을 인정은 고사하고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여기에 채옥의 아버지가 죽던 날, 은이는 머슴 석술에게 강간을 당할 뻔한 일이 터진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은이는 유산을 하고 엎친데 겹치는 격으로 상훈의 부모는 이를 빌미로 은이를 내쫓는다. 이야기는 젊은 서른 살의 은이와 채옥이가 오지리를 떠나는 것으로 맺는다. 비극이다.

 

“은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두고 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채옥도 그것을 두고 왔는가. 우리들의 서른 살. 서른 살의 절망과 희망. 작은 소읍의 대합실은 버스 한 대만으로도 대합실을 텅 비게 했다. 텅 비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떠날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차가 오면 이제 자신도 영영 떠나가리라. 누구누구의 아내가 아닌, 노동자 오은이로 살아가야지. 은이는 무릎 위에 옷가방을 놓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세상은 신분과 계급의 사회에서 부도덕함이 도덕으로 위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도덕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첩의 자식이나 머슴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찍어놓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며 얻는 행복이나 즐거움이 있을까. 아무튼 오지리를 떠난 은이와 채옥이 희망을 잃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기든 고집이든 무소의 뿔처럼 굳건하게 헤치고 나가 비극의 아픔을 묻어버리고 희극으로 다시 오지리에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옛 곡성역이 있는 곳의 마을 오지리. 곡성군 오곡면의 면소재지 마을 오지리. 서른 살 젊은 두 여인의 아프고 비극적인 이야기의 배경 오지리는 지금 ‘곡성섬진강기차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척에 섬진강은 오곡면과 고달면 사이에 또 다른 자연이 낳은 침실습지이고, 봄이면 철쭉꽃길이 흐르는 섬진강과 함께 1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진다. 자전거 길도 레일바이크도 함께한다. 아름답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