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해 현장에 위령비 세워 
 

▲ 동창교 지나 직진하면 보성군과 장흥군으로 이어지는 국도2호선, 오른쪽은 영암군으로 가는 국도13호선으로 연결된다. 동창마을은 전라남도 남부지역의 교통 요충지였다.

 

세지면 행정복지센터와 농협, 초등학교와 중학교, 보건지소, 우체국 등이 있는 오봉1리는 동창마을로 불린다. 조선시대 영산강 지류인 만봉천을 따라 바닷길로 운송하는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동창이라 불렸다. 세곡창고 가까이에 공무를 위한 숙박시설인 창흘원과 전통시장인 창흘장이 있었다. 창흘원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어 아쉽지만, 창흘장은 지금의 동창전통시장으로 ‘동국문헌비고’(1770)에 5일과 10일에 장이 섰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2일과 7일에 열린다.

 

동창은 해상교통 뿐 아니라 육상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우회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국도 23호선이 관통하던 동창사거리는 보성군과 장흥군, 영암군 등 전라남도 남부지역을 오가는 시외버스의 주요 거점이었다. 

 

“사거리를 기점으로 윗마을은 ‘우더미’, 아랫마을은 ‘아랫더미’라 불리었다”는 ‘동창로 150’ 최남열(62세) 씨는 “고등학교 가면서 떠났다 42년만인 2020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카페를 열었다”며 “광주와 서울에서 식당이며 택시, 생수회사, 사우나 등 안 해 본 일이 없이 살다 건강에 이상을 느껴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고 한다. “테니스며 야구, 수영 등 운동을 좋아해서 건강은 자신했는데, 스트레스가 많은 도시에서 살다보니 건강을 잃을 뻔 했다”는 최 씨는 “동호인들과 함께 꾸준히 운동해 건강을 회복하고 활력을 되찾았다”며 환하게 웃는다.

 

한국농어촌공사 나주호관리소장으로 정년퇴직한 김용희(78세) 씨는 “봉황출장소에서 신입 직원으로 근무하며 나주호 건설과 관련한 업무를 했는데 34년만에 소장으로 퇴직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니다”며 “대산리에서 초등학교까지 통학할 때는 면에서 한 대 밖에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 씨는 세지면노인회 총무를 맡고 있다.

 

▲ 지난 7일 오일장이 선 동창전통시장의 상인들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발소가 서넛, 다방이 7개나 있었는데 지금은 다 문을 닫았다”는 김공렬(76세) 씨는 “월남전에 파병돼 복무하다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로 얼굴을 다쳐 전역한 ‘월남전참전유공자’”라며 “군에 입대하기 전에 시작해서 52년째 시계방을 하는데, 시외버스도 끊기고 오가는 사람도 줄어 가게문 열기가 무색할 정도로 동창 전체가 쇠락했다”고 한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물건을 살 정도였는데 우회도로 생기고 나서 지나는 차도 줄었고 오가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는 사거리마트 나상준(75세) 씨는 “오봉3리 명월촌에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짓다 1991년 가게를 시작했다”며 “12마지기 논농사면 큰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는데, 두어 마지기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고 한다.  

 

다도면 마산리가 고향인 세지스넥 박영순(73세) 씨는 “아저씨 근무지인 창룡국민학교가 있던 봉황면 용곡리에 살면서 동창에 분식집을 연 지 33년째”라며 “새벽에 일어나 1시간여 밭일을 하고 7시25분 버스로 출근해서 저녁 6시20분 차로 어김없이 퇴근한다”고 웃음짓는다.

 

“고향인 봉황면 용곡리와 가깝고 유동인구도 많고 교통도 편리해서 1981년 호남농약사를 연 지 43년째”라는 배희태(68세) 씨는 “신용카드와 상품권 사용이 늘면서 외상거래가 많이 줄었다”며 “오랫동안 외상값을 갚지 않아 소송해서 판결문을 받아도 주거불명이나 사망 등으로 집행할 수 없어 쓸모없게 된 적도 있었다”고 씁쓰레한 웃음을 짓는다.

 

▲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20일 국군은 이유도 모르는 140여명의 민간인을 총살했다. 사건 현장인 동창교 옆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고향인 산포면 산제리에서 23세에 결혼해 교산1리 발산마을에 살았다는 윤성순(76세) 씨는 “시부모 모시고 1년여 살다 분가해서 54년째 식료품점을 하고 있다”며 “4남매가 직장 갖고 살림 꾸려 사는 게 재산이고 재미제 뭐가 있겄어! 작년 설엔 외손녀한테 용돈도 받았다”고 호탕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전주에 사는 95세 되신 고모가 전화할 때마다 ‘잘 사느냐? 언제 오느냐?’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는 김성례(76세) 씨는 “10세 때 고향인 영암군 도포면에서 서울로 이사갔는데, 19세에 자식이 없는 고모가 살던 봉황면 덕림리로 와서 모시고 살다 27세에 결혼했으니 친부모님 만큼이나 정이 깊다”고 한다.

 

세지면 새마을부녀회장 백정숙(72세) 씨는 “전세가 20만원 할 때, 벽시계만 팔아도 장날이면 외상값 포함해서 30만원 넘게 수입이 있기도 했다”며 “20여년 호프집도 했는데, 날이 새도록 손님이 있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 땐 뭘 해도 됐다”고 덧붙이는 백 씨는 장흥군 관산면이 고향이다.

 

“남편이 기술이 좋아 못 고치는 게 없다”는 기정순(63세) 씨는 “금천면 원곡리로 시집와서 배와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가전제품 판매·수리점을 낸 지 43년 째”라며 “지금은 모터수리만 전문으로 하는데 인근 남평읍·봉황면은 물론이고 영암군 신북·도포면까지 출장을 나간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동창엔 아픈 역사도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20일 국군이 오봉리와 벽산리 주민 140여명을 동창교 아래에 모아놓고 총살한 것이다. 1998년 나주시의원에 출마한 이상계 후보(현 세지면 노인회장)가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을 계기로, 제16대 국회에서 배기운 국회의원이 주도한 청원을 통해 진상조사가 이뤄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의해 2007년 최종적으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규명됐다. 2005년 11월 25일 사건 현장에 세워진 ‘동창양민학살희생자위령비’ 앞에서 무자비한 국가권력의 폭력을 되새겨본다.

 

 

 

“동창에서 처음으로 농약전문점을 열었다”

 

현대농약사를 운영하는 김철수(75세) 오봉1리 동창 노인회장은 “스무살 되던 해 형님이 운영하던 약국 옆에 가게를 열었다”며 “그 때는 약국에서 농약을 판매하긴 했지만, 농약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는 없었다”고 한다.

 

“집안 동생이 새로 구입한 경운기를 다루는 게 서툴러 애먼 사고를 당했다”는 김 회장은 “내리막길은 후진으로 가야 안전한데, 전진하는 바람에 뒤집어지는 것을 막으려다 검지손가락이 벨트에 말렸다”며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했으면 봉합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제대로 된 도구도 없는 시골병원이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들은 군대 가기 싫어 일부러 그런 줄 아는데 제대하고 나서 이런 사고를 당한 건 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웃어 보이는 김 회장은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육군 12사단 수색중대에서 ‘자고 나면 훈련이고 구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제5~7대 나주시의회 의원으로 경제건설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지낸 김 회장은 “높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본청에 있던 민원실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시민들의 편의와 접근성을 높였던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영산포라는 지명을 살리고 영산강 저류지를 관광지로 활성화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강조했는데 최근 들어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음이 증명되고 있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2019년 겨울 어느날 평소와 달리 팔·다리에 힘이 없고 속이 메스꺼웠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하다 뇌경색으로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됐다”는 김 회장은 “이런 저런 이유로 사흘을 무심히 넘긴 게 병을 키운 꼴이 됐다”고 한다. “꾸준한 재활운동으로 팔은 거의 회복됐다”는 김 회장은 “시의원도 하고 지금까지 큰 욕심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은 다 집사람 덕”이라고 덧붙인다. 김 회장은 동곡리가 고향인 부인과 사이에 4남매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