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채석 기행작가

진뫼마을에서 천담리를 지나고 구담리에 이르면 길은 끝나고 오랜 풍상의 아름다운 느티나무가 굽어보는 물굽이는 섬진강 500리 중 으뜸이다. 그래서 이곳이 로케이션 장소였던 이광모 감독의 영화 타이틀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던가. 영화는 1998년에 개봉되었다. 벌써 25년이 지났다.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그러나 방앗간에서 미군병사와 한국여인의 정사 장면을 두 소년이 훔쳐보는 신은 또렷하다.

두 소년은 성민과 창희다. 한국 전쟁 당시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12살 소년의 시선을 통해 진솔하게 그려나간다. 어느 날 방앗간은 원인 모를 불길에 휩싸이고 홀연 창희가 사라졌다. 한마디 말도 없었다. 전쟁이 멈추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창희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고, 성민의 누나는 미군의 씨앗을 잉태한 채 버림을 받는다. 부모와 함께 마을을 떠나는 성민은 창희가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희망은 아름다움이다. 눈에 뵈는 아름다음도 좋지만, 희망의 아름다움은 마음의 아름다움이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이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 보자! 임실의 옥정호에 이르면 호수에 풍덩 헤엄치며 놀기라도 하듯 아일랜드 붕어가 아름답다. 신선이 노닐던 사선대도 아름답다. 맡길 임자의 임(任)과 열매 실(實)의 임실 여행은 마음을 맡겨도 좋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과 강은 일러 산수화니까.

최근에는 섬진강의 옥정호에 붕어섬과 연결된 출렁다리가 개통되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어딜 가나 출렁다리 붐이다. 임실에서 가까운 이웃 순창의 채계산에도 출렁다리가 있고, 진안에도 운일암반일암 출렁다리와 구봉산 출렁다리가 있다. 게 중 진천의 출렁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거창에는 Y자형 출렁다리가 있다고 들었다. 어찌 보면 관광객만을 위한 무분별한 출렁다리가 아닐까.

이는 창의성이 없이 한 지자체에서 하면 우리도 한다는 식의 따라 하기 병이 아닌가 싶다. 그랬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뭇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알려지니 여기저기에 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2구간 285km의 지리산 둘레길이 생겨나고, 서울 둘레길, 남산 둘레길, 수원화성 둘레길, 한라산 둘레길, 부소담악 둘레길, 월류봉 둘레길, 북한산 둘레 길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둘레길인 4,500km의 ‘코리아둘레길’도 있다.

‘코리아둘레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동해를 따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잇는 750km의 해파랑길, 고성에서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까지 분단고착의 현장을 따라 이어지는 510km의 DMZ 평화의 길, 인천에서 1,800km의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전남 해남 땅끝 탑에 이르는 서해랑길, 다시 해남에서 부산에 이르는 1,470km의 남파랑길이다. 역사의 아픔과 바다를 보면서 걷는 길을 걷다 보면 생각으로 가득할 것 같다.

출렁다리를 이야기하다가 둘레 길을 걸었다. 그런데 출렁다리 못잖은 것이 집라인과 케이블카다. 이들 모두 즐기기 위함이다. 즐기는 거 좋다. 그러나 지난여름 그것도 사람으로 치자면 극악무도할 정도의 여름을 지나면서 최고의 피서지는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의 독서도 취미라면 취미고 즐긴다면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 즐거움은 그 가치가 다분히 다르다. 작가의 상상력에 내 상상력을 더하며 느끼는 거니까.

아무튼, 일반적으로 즐기기 위한 시설은 대부분 자연을 거스르거나 훼손한 결과물로 산봉우리에 건축물이 들어서고, 케이블카를 이송하기 위하여 숲을 뚫고 철탑이 솟아있는 모습을 보면 이익에 약한 인간의 단점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딜 가나 붕어빵처럼 비슷비슷한 축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진달래나 국화와 같은 꽃이나 산천어나 전어와 같이 죽여서 먹는 축제가 대부분이다. 다만 내가 아는 최고의 축제는 이청준의 문학의 『축제』다.

지금은 자연을 건드리며 가는 곳마다 파크골프장 늘리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여념이 없지만, 출렁다리든, 둘레길이든, 집라인이든, 케이블카든, 트로트가수나 부르는 축제든 특색보다는 거기서 거기라는 게 문제로 광주에서 비엔날레가 성공하니까 부산에서 따라 하는, 부산에서 영화제가 성공하니까 여기저기에서 따라 하는, 남이하면 따라 하는 속성을 버리고 성공한 행사를 더 성공할 수 있는 성숙함으로 진일보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듯 성숙한 사람에게는 섬진강이나 옥정호가 허기진 아름다움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실지로도 아름다우니까. 아무튼, 임실에서는 치즈다. 주한미군부대 뒷문으로 흘러나온 치즈가 전부였던 60년대 말, 생산의 성공과 함께 임실의 브랜드로 수익 증대와 활성화라는 수요창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흔하지 않은 사례가 그것이다. 그래서 익산을 떠난 전라선 열차가 여수로 향하다가 임실에 들어서면 노릇노릇 치즈 향에 잠시 주춤거린다. 모차르트인지? 모차렐라인지? 헷갈리는 까닭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