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어선을 타고 제주바다를 누볐던 숙련된 뱃사람들이 40여명이 타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다. 배의 마지막 끝점은 뻔했다. 침몰되어 물이 차고 암초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되거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편하게 생을 마치는 일이다.

일행은 목이 메어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경차관 최부는 얻어맞은 몽둥이와 매로 끙끙 앓고 두러 누웠으니 앞날이 캄캄하다. 황해에서의 조난에는 앞장선 최부의 헌신적인 리더로 똘똘 뭉쳐 위기를 잘도 넘겨왔는데 그마저 드러눕고 일어나지 못하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숨만 나왔다. 어느 순간 죽음의 저승사자를 맞이하는 길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까’

모두가 궁리해 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 수정호 안에 있던 닻과 노는 이미 바다에 던져졌고 임시로 만들어 쓰던 돛까지도 바람에 파손되어 삐거덕거리는 소리만 낸다. 배는 제 맘 대로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동서로 출렁이며 너울댄다.

아무리 백전노장의 초공이나 키잡이라지만 부셔진 배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어둠 속의 저승사자가 조금씩 가깝게 다가온다. 침몰의 시간은 서서히 다가서며 어깨를 짓누른다.

최부 일행은 모두가 한숨만 몰아쉬었다. 슬픈 비극이 넘치는 눈물도 말라 버렸다. 오직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절망에 젖은 사람들의 한숨과 한탄이 흘러나온다. 모두가 돌밥을 씹은 듯 얼굴이 찌그러지고 입을 다물었다. 서기(書記) 이효지가 말했다.

 “우리들의 죽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경차관은 몽둥이로 얻어맞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으니 이를 어쩌란 것입니까?”

최부가 그 말을 듣고 나서 말했다.

 “사람이란 누구 할 것 없이 귀하고 소중하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누구는 죽어도 좋고 누구는 안 된단 말인가?

제주도는 사통팔방으로 터진 바다 속에 홀로 있는 섬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9백 여리의 배를 타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유달리 파도가 높아 뱃길이 쉽지 않다. 험상궂은 정월의 바다를 피해서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다. 유독 바람이 세찬 겨울에는 거센 파도 때문에 열에 대여섯은 표류하고 침몰해서 익사하는 실정이었다.

숙명적으로 배를 타야만 하는 제주 인들에게 오늘 살아 있다고 좋아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침몰사고가 자주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바다에 빠져 죽은 남자들은 시신을 건지지 못해서 묻을 수도 없다. 그로 인해 남자들의 무덤이 적고 그 대신 여자들이 남자보다 세배는 더 많다. 물론 당시의 조선사회는 일부다처제였지만 유난히 제주에서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살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제주에서 계집아이를 낳으면 효도할 아이라고 즐거워한다. 반대로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는 언젠가는 바다에 나가 죽을 아이라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고래나 상어의 먹이감이 될 것으로 치부해 버린 것이다.

날씨에 운명을 맡기고 아무리 배를 탄 사람들이라고 귀한 목숨을 하루살이에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나라님의 명을 받들어 모시는 관원들일지라도 항상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다. 대부분 제주출신으로 구성된 호송군들은 끼리끼리 모여 같은 말을 쑥덕댔다.

“제주한선은 속도도 빠르고 튼튼해서 순풍을 만난다면 풍파에 침몰하거나 익사당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불행하게 표류를 당하여 귀한 경차관의 몸으로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당했으니 이를 서러워하며 통곡할 따름입니다.”

“알았다. 우리 모두 합심해서 난관을 이기도록 하자.”

이들의 목숨은 날씨가 문제였다. 배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거의 전부가 부셔졌으니 바다가 어떻게 변할지 그것이 문제였다.

바다의 움직임에 따라 43명의 명줄이 달린 것이다.이날은 맑았다. 바다에서 정처 없이 떠돌다가 오후가 되어 어느 섬에 이르렀다. 삼면이 터진 곳으로는 바다의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북쪽은 섬이 뻗어 내리며 막아주고 있어서 아무리 강한 북풍일지라도 피할 수 있는 섬이다. 먼바다로 표해(漂海)하기 전에 이곳에 정박을 하면 안심이 될듯하다.

불행하게도 수정호에는 닻이 없었다. 날강도가 약탈을 끝내고 도망치면서 행여나 자기들에게 해가 미칠까봐 닻줄을 끊어버리고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선장과 총무는 배 안의 나무토막들을 이용해서 새롭게 우선 쓸 닻을 만들기로 했다. 당장 닻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도들의 무지막지한 매질로 몸이 퉁퉁 부어오르고 입이 찢어져서 말도 할 수없는 상태인 최부는 지켜보기만 했다. 힘이 있는 호송군 여섯 사람을 불러들인 정보가 말했다.

“배의 밑바닥에 놓아둔 돌을 가지고 나오라.”

 당시에 최부 일행이 타고 있던 배는 한선으로 단단한 나무로 만든 배였기에 거친 해상에서 배의 중심을 잡고 밸런스를 맞추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배의 바닥에는 돌을 실어 무게중심을 배의 아래쪽으로 모이게 해야 한다. 배의 좌우 흔들림이 커지면 결국 배는 뒤집히고 만다. 이때 배의 중심이 아래에 있다면 전복되는 사고는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배는 대부분 철로 만든 배이기에 커다란 탱크를 만든다. 그곳에 바닷물을 채워 무게중심이 배의 아래쪽으로 내려가게 해준다. 배에 실은 화물에 따라 탱크에 담을 물의 양 을 조절해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목선에서는 물을 채울 수 없으므로 배의 밑바닥에 돌을 채워 싣고 다녔던 것이다.

 별도포를 출항할 때 수정호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밑바닥에 실었던 돌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길쭉한 것들로 골라서 가져오도록 했다. 밧줄로 묶기 좋은 긴 돌을 두 사람이 목도해서 끄집어냈다.

모두 네 개를 꺼냈다. 사각으로 얽히게 묶었다. 바닷물 속에서 풀어지면 낭패다. 임시로 사용할 닻이지만 단단하게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