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 일행은 강기슭을 끼고 소나무, 대나무, 귤나무 등이 울창한 삼림을 지나고 다정, 경안포, 계금향, 유씨정절문을 지나 서진교에 도착했는데 서진교는 매우 높고 컸다. 두 개의 큰 다리를 지나 서파청에 도착했다. 파의 양쪽 기슭에는 돌로 제방 둑을 쌓았는데 방죽으로 강물을 막아 다른 강과 통하지 못하게 한 다음 양쪽 곁에 기계를 설치하고 대나무로 만든 끈으로 배를 끌어올려 방죽위로 넘기고 있었다.

서여향(西璵鄕)의 신언(新堰)에 도착했는데 이 방죽은 전에 찰자항으로 불렸던 곳이다. 안공(顔公)이 방죽을 만든 뒤 이 항을 폐쇄시키고 그 물길을 동쪽으로 돌려 광리교 남쪽에 이르도록 하였다. 파를 설치한 뒤로부터 관청의 배만 통과 시켰는데 이 방죽을 신언이라고 부르며 그 규모는 서파와 엇비슷했다.

최부 일행이 탄 배는 끌어올린 후에 방죽을 넘어 가야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데도 가는 길을 멈출 수 없었다. 어두움을 뚫고 강북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이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새벽공기를 가르는 닭울음소리는 조선이나 중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고 같은 소리로 들려왔다.

  “꼬끼오 끼이익.”

천리만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초상도 치루지 못한 최부의 심정은 편할 리가 없었다. 닭소리마저 슬픈 감정을 더욱 더 서럽게 한다.

 ‘아-아, 무슨 죄를 졌기에 이렇게 모진 고생을 해야 하나. 이보다 더한 불효가 있을까!’

날씨가 흐린 날인데도 아침 일찍 출발해서 서북쪽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강과 산은 크고 높았으며 들에는 인가가 조밀하고 경치와 풍물이 풍성했다. 저녁 무렵에 여요현에 도착했다.

강이 성을 안고 있었는데 서쪽에는 등이 굽은 다리가 보였다. 다리 밑으로는 배가 다닐 수 있는 세 개의 홍문이 아름다웠다. 자정 무렵 파에 도착했다. 파는 신언과 같은 규모였다. 최부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배를 다시 끌어 올려 파를 통과하여 큰 다리 밑을 통과했는데 강둑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날이 밝아 올 무렵 어느 조그만 파에 도착했는데 이 파도 하신파와 비슷했다. 배를 위로 끌어 올려 파를 넘은 다음 강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바로 상우강이었다.

중국을 상징하는 용(龍)은 오직 물에서만 산다. 물이 강을 만들고 거미줄 얽히듯 이리저리 물길을 연결해서 파와 언을 만든 남중국은 가히 물의 천국이다. 물과 가까이 사는 중국에서 용이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길을 걷는 것보다 수로를 타고 다니는 그들이기에 물이 더 친근한 것이다. 용이 사는 물이 있어서 중국은 가는 곳마다 용이 사람들을 맞이해 준다.

성스럽고 고마운 물은 인간을 지켜주는 생명이다. 오늘날 현대과학은 광대한 우주 속에서 물을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에도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가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표면에서 물의 흔적을 찾았다고 해서 과학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물의 흔적이 보인다고 과학계가 이렇게 떠든 것은 물이 생명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을 찾았다는 것은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남부 중국에서 물은 기름진 농토를 적셔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명의 꽃을 피웠다. 넉넉한 식량은 모든 중국인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양이 생산되었던 것이다.

여요현에 도착한 최부 일행

최부일행이 타고 갈 경?항(京?抗)대운하도 물을 이용한 지혜의 산물이다. 파나 언도 인공강의 일종으로 인위적으로 물을 이용하기위해 만든 것들이다. 그만큼 물은 중국인들에게 필수적인 것이고 물을 잘 이용해야만 했다. 물은 생명체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중국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세포 생물부터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간까지 예외가 없다. 35억 년 전 원시 바다에 있던 호기성 원핵생물도 물과 이산화탄소로 광합성의 재료를 얻었다. 물이 없으면 생물이 생겨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의 여러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물은 생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생명체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서쪽의 티베트지역이 높고 황해가 있는 동쪽이 낮다. 대부분의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그 강은 한강의 10배가 넘는 5400km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긴 강이 양자강이고 황하 강이다.

동양문화의 근원은 황하문명이 그 시원을 이룬다. 황하라는 긴 강은 흘러가면서 내륙의 황토고원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많은 황토가 강물에 섞여 물의 색깔이 누렇게 변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황하인 것이다.

황해에서 난파당한 최부가 배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최우선적으로 살펴보았던 것도 바다물의 색깔이었다. 황토색의 농도에 따라 중국대륙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계산해 냈는데 이는 바다색이 짙은 황토일수록 뭍에 가깝고 연할수록 먼 바다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중국동쪽의 비옥한 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고 문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먹을거리가 생산되는 땅이라야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은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 물은 기름진 삼각주 평야를 만들어 내고 풍족한 식량이 증산되면서 물과 용이 사람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남부 평야지대는 인류문명의 발상지다. 물속의 용이 그 땅을 지켜오고 물이 있어서 평야가 마련되었다.
 
강(江)과 용(龍)은 불가분의 관계다. 용이 사는 곳은 물이 있고 물이 있어야 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광활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중국에서 황제는 용으로 상징되었다. 진시황이 용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용이 곧 그가 다스리는 백성을 잘살게 해주는 물의 신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용은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로 용을 택했지만 이는 자신의 포악하고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다스렸던 폭력적인 자신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신성하고 자비스러운 용은 무섭고 거친 괴물이 아니라 물과 함께 중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가 용이다. 지혜와 힘과 용기를 갖춘 온화한 동물이 용이라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은 생명의 원천인 물을 상징해서 거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했다. 중국인들은 용이 강, 호수, 바다 및 하늘에 높이 뜬 비구름 속에서 산다고 믿었다. 용은 중국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용은 낙타의 머리, 사슴의 뿔, 토끼의 눈, 물고기의 비늘, 독수리의 발톱, 호랑이의 발바닥, 황소의 귀, 그리고 고양이의 긴 수염을 합쳐놓은 모양이다. 용은 누에만큼 작게 될 수도 있고 세상을 덮을 만큼 크게 변신할 수도 있는 변화무쌍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믿었다.
 
중국은 가히 용의 나라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지 용이 자리하고 있다. 살아 숨쉬는 용을 찾아 최부의 조금씩 발길을 따라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