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공작 정치시대의 슬픈 기록‥DJ와의 47년은 고난이자 축복의 연속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85) 여사가 자서전 《동행》을 출간했다.

책의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붙인 제목이다.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 속엔 여성운동가로서, 핍박받는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서, 또 대통령의 부인으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대중 납치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에 대한 뒷이야기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계훈제 선생, 김활란 박사,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에 대한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오랜 시간 정치가 빼앗아가 버린 가족들에 대한 살뜰한 이야기, 즉 세 아들들에 대한 따스한 어루만짐과 개인으로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 생생히 새겨져 있기도 하다. 하나의 개인사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동행》은 1992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 정치와 유신체제, 군사정권 등 험난한 세월을 거쳐 퍼스트레이디가 되기까지 격동의 한국사를 정면으로 관통해 온 이 여사의 삶이 한국 현대사와 오버랩 되면서 펼쳐진다.

책은 역시 삶의 동반자이자 정신적인 동지로 40여 년을 함께 했던 김 전 대통령과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온갖 고초를 겪었던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며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남편의 꿈이 꿈으로 끝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기도 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지팡이 짚고 무거운 걸음을 때는 남편의 뒷모습이 결혼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네 차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소회도 털어놓는다. 1971년 95만표 차이로 패했던 첫 대선 도전에 대해선 ‘전쟁에서이기고 전투에서 진 선거, 투표에서이기고 개표에서 진 선거’라고 평하며 너무나 아쉽고 억울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시대 순으로 총 6장으로 나누어졌으며 1장에서는 1922년부터 1962년까지 유년시절과 유학생활을 다뤘으며, 이후 72년까지 이야기를 풀어낸 2장에서는 이 여사의 삶에 김 전 대통령이 어떻게 동반자로 등장하게 됐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3장은 김대중 납치사건을 비롯해 유신시대의 정치적 억압을 어떻게 견뎌냈는지를 회고하고 있으며, 1980년과 85년까지를 다룬 4장에서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과 사형수에서 망명객까지의 굴곡 많은 이들 부부의 정치인생을 풀어냈다. 이후 1998년 전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을 할애한 5장은 ‘6월 민주항쟁’과 92년대선 후 정계를 은퇴하기까지의 삶을, 마지막 장에서는 정계복귀 후 98년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맞이한 푸른 기와집‘ 청와대 시대와 최근의 생활을 소개했다.

여기에 역사의 현장에서 만났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눈에 띈다. 특히 재야 정치인 계훈제 선생과 한 때 부부의 연을 맺을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는 지인들 사이에선 알려진 내용이지만 공개적으로는 처음 소개되는 이야기란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흥미롭다. 1982년 남편의 석방을 요청하러 처음 만났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면서 “때로는 바지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라고 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이장무 총장은 추천평에서 “이희호 자서전 《동행》은 격동의 세월을 헤져 나온 이희로 여사의 도전과 사랑, 희생의 삶을 생생히 담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 살아온 여성 지도자의 꿈과 고뇌, 한 정치 지도자와의 운명적 동행이 가져온 아픔과 희망, 그리고 겸허한 신앙인으로서의 성숙 과정은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또한 이 여사가 전하는,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영부인으로서 체험담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에 대한 또 하나의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한 희망을 다시 발견하고 화함과 포용의 길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