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시인

깜냥에 그림붓을 잡은 지도 10년을 넘겨 감히 그림세상에서 십 년 감수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게 됐다. 그 동안 작업하면서 꿈꾸고 요량한 것은 어찌하면 세상을 보다 눈부시게 채색할까 였다.
 
욕망 없이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욕망 없이 이룩할 수 없고 이 지상의 미로 또한 독파할 수 없다. 사랑마저도 그 물줄기는 욕망에 이어져 있고 변용된 욕망의 회로위에 피돌기하고 있다면 인간 이외의 그 모든 것들까지 욕망의 역사에 진배없겠다. 욕망 때문에 때로 주위사방과 섬처럼 격리되기도 하지만 세상의 광활함을 비상하기도 했었다.
 

▲ 김 종 시인

올리버 색스는 〈색맹의 섬〉에서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군도중의 핀지랩과 폰페이에서 희귀한 풍토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경외와 감동의 기록을 담아내고 있다. 색깔 구분이 불가능한 유전적 색맹들은 이 책에서 밝기의 차이만으로 색을 구분하는 독특하면서도 경이로운 세계를 체험한다. 함께 색맹인 모녀가 천연섬유 깔개를 짜는 모습, 색맹 아이들과 저자가 어울린 밤낚시 등 색맹을 극복하고 보완해가는 이들의 놀라운 감각 등이 맑고 깨끗한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저자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 태생의 정신과 의사. 그는 이미 수 많은 신경정신환자들의 임상사례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묘파했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취약한 시력 뒤에 오히려 증진되는 청력과 기억력, 덤으로 색깔의 조화에 대한 감지력까지 보고하고 있다.
 
실재하는 ‘색맹의 섬’은 그 자체로도 흥미가 동하지만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우리네 삶에 관념으로 덧 씌워진 일상적 색깔로는 더 이상 눈부시게 살아갈 수 없다는 감각적 사실까지 가르치고 있다. 익숙한 만큼 우리네 지상은 답답하고 지루하다. 촉각이 뻗어나간 자리마다 움터 올라야 할 새 생명 대신 권태와 짜증이 범람하게 된다.
 
사람이 인지하는 색깔은 1만 1000여 가지. 그런데 높이 하늘을 날아 먹이를 포획하는 매는 색깔 판별력이 인간의 다섯 배쯤이라는 것. 동공이 길쭉한 고양이는 망막 뒤에 거울 같은 반사막이 있어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난다고 한다.
 
진정 감동적인 삶은 평범함을 경계하고 낯익은 상식에 저항하는 일이다. 어찌 똑같은 일의 두 번 반복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종말은 멀거나 가깝거나 상관없지만 똑같은 일이 여러 번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어제와 오늘이 같을 수 없고 그 작은 모래알도 똑같은 두 개가 없다하지 않던가. 아니, 그 많은 사람들에게 두 개의 똑같은 지문이 없다면 내가 왜 동일한 두 개의 사안과 사물에 절망하는지 이해되실 것이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말하든 세상은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한다. 새로움은 바퀴 달린 수레처럼 전진하고 있는데 우리들만 팔짱끼고 저녁노을 바라보듯 실로 멍청히 서 있는 것이다.
 
상식에 저항하면 세상은 산뜻하다. 아니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새롭고 특이하다. 들꽃 한 송이, 굴러다닌 돌멩이 하나에도 저마다 생의 빛깔은 찬연하다. 문제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절망에 겁먹지 않고 희망마저 뒤집으며 가슴 설레이는 자, 이제는 천길만길 따분함의 낭떨어지에서 뛰어내릴 차례 눈부신 세상에선 뒤집는 자만이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본래적인 모든 것들에 저항하고 있다. 이미 그쯤그쯤 관념화된 형상과 색깔로는 순수위에 집지 울 수 없다. 에꾸 눈의 마을에선 정상인이 장애자라지만 그게 대순가. 나무, 하늘, 강물, 태양, 구름, 돌, 바다…… 따위는 보지 않고도 쉬운 암기식 문제처럼 맞춰낼 수 있다. 변화 없는 현실에서 용기 있게 탈출하자. 우리 함께 새로운 색맹의 대륙을 만들자. 그 대륙의 백성으로 눈부시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