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시 인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스님의 입적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님이 유언으로 남겼던, 자신의 저서에 대한 출판금지령(?) 때문에 서점가 법정스님의 코너에는 스님의 ‘저서 사재기’가 횡행한다고 한다. 모든 집착에서 해탈한 법정스님께서 아마도 씁쓸하게 웃고 계시지나 않을까 싶다.
 
내 자신마저 소유가 넘침을 보며

스님이 떠나고서야 스님의 평생 화두였을 무소유가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김종’이라는 내 이름 두 자에 붙어있는 물질의 양을 돌아보니 얼마나 초강도의 비만에 걸려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늘 물질 면에서는 소위 재복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스님이 3 년여 동안 애지중지 키웠던 난분을 떠나보내며 서운함보다는 홀가분함을 토로했을 때 문득 내 소유의  넘침을 인식하게 되었다.  
 
법정스님이 무소유의 화두를 작정한 계기는 새삼 이렇다.

▲ 김 종/시인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TV드라마에서 재벌가의 패밀리들이 개념 없이 돈 쓰는 것을 보면서 일반서민들 특히 비정규직이나 무직자들의 심정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부풀려진 점도 있겠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들은 모두 재벌이 되기를 꿈꾼다. 복권당첨이나 돈벼락을 꿈꾸며 부동산, 펀드, 주식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오죽하면 우리 국민을 일러 모두 부자예비군이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우리 사회는 부자들의 감세에 대해서도 그리 크게 반발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부자가 될 테니까 대충 넘어가자는 내심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 반대급부를 보지 못하는가. ‘부자 삼대 없다’는 말이 있다. 현재의 내가 부자라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서민들의 모습 또한 내 삼대 사대 후손들의 모습일 수 있다. 크게 마음을 열어 자선가가 되지 않더라도 부의 편중은 지양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조선시대 최대의 풍류남아였던 백호 임제 선생은 자유인을 하루에 만 냥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무소유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극과 극은 통하는 법, 만 냥이라는 재화적 개념은 무소유와 일맥상통한다. ‘보리죽에 부른 배는 연화잣죽도 내사 싫다’는 속담처럼 즉 하루에 만 냥을 쓰다보면 모든 물질적 욕구가 사라지고 비로소 물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신적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그는 아마도 과식에 위장이 터지듯이 정신적 위장도 터지고 말 것이다.
 
바야흐로 봄날이다. 눈 가는 곳마다 꽃들의 화려한 자태에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무엇에든 누구에게든 그만 콱 환장해버리고 싶은 계절이다. 그러나  ‘花無十日紅’이지 날마다 봄은 아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고운 빛깔도 언젠가 사금 들어 빛을 잃고 분분한 꽃잎되어 날릴 것이다. 자선은 생의 저축에 다름 아니다. 효의 실행처럼 청춘 또한 알게 모르게 저축해 두어야 한다.

법정과 간디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

 여기 그런 저축의 한 예가 있다. 한용운 선생이 작은 암자에 기거하고 있을 때였다. 모처럼 한가한 시절이었는데 암자 앞 장독에는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선생은 까마귀들이 기억력이 없다 하여 이름이 까마귀라는 속설에 흥미가 생겼다. 정말 그런가 시험해보기로 작정하고 일부러 넉넉히 먹이를 내놓았다. 까마귀들은 먹이가 넉넉하면 여기저기 감추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먹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까마귀들은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날랐다. 어디에 감추어두는가를 눈여겨보았다가 다음에 찾아먹는지 어떤지를 기록해가면서 관찰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까마귀들은 숨겨둔 먹이를 정확하게 찾아내었다. 속설은 잘못된 것이었다. 
 
미물인 까마귀도 제 것은 숨겨두었다가(저축) 정확하게 찾아내어 먹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물욕에서 벗어나기가 그리 눅눅하겠는가. 이게 바로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이나 간디가 뭇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일 터이다.
 
그러나 우리 범인들은 아마도 그 중간쯤에서 타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허기와 과식의 그 중간지점에서 소유하고 나누며 산다면 백호 선생의 말씀처럼 마음 그득하여지고 하루 만 냥을 쓰고 사는 셈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인과 미물의 중간단계인 범생이들만이 무소유라는 미덕을 실천하고 사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