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이 7년 만에 펴내는 용서와 화해의 신작 장편소설!!

부초의 작가 한수산씨가 장편 《용서를 위하여》를 들고 돌아왔다. 2003년 출간한 ‘까마귀’ 이후 7년만의 귀환이다. 이 책은 지난해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영적 성장기와 신군부로부터 고문당한 상처를 안고 살아온 작가의 개인사를 교차시킨 일종의 고백성사다.

특히 1981년 5월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욕망의 거리」로 인해 보안사에 끌려가 치욕적인 고문을 당했던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상세하게 털어놓은 작품이다.

한씨는 지난달 20일 이 책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동시대를 산 한 인간이 절망의 황폐 속에서 어떻게 소생하고, 김 추기경이 어떤 영향을 줬는가를 그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한씨는 이어 “1980년대 추기경이 ‘적대적인 사람이라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나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추기경이 어느 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처럼 고문을 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요. 그런 의문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 명제였고 그런 과정 때문에 이 소설이 쓰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용서를 위하여》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경제성장기에 겪어야할 주인공들의 정신적 공황을 그린다. 작가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버리던 중 ‘국가원수 모독’, 군비방과 이적행위, 사회부정시‘라는 죄목으로 덧씌워져 무자비한 감금과 폭행을 당하고 만다. 이미 30년이 지난 일임에도 마치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묘사된 소설 속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작가는 세 번째 시도만에 카톨릭에 입문한다. 그러나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김수환 추기경의 ’용서는 먼저 피해자가 해야 한다‘는 말씀은 과거의 상처와 깊은 분노 속에 번민하던 작가에게 대립각을 이루면서 또 다른 고통과 갈등의 요인이 된다.

소설은 작가적 체험을 바탕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든다. 주인공이 곧 작가 자신이다. 그는 김 추기경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는 영적인 형성기와 독일 유학 시기의 현장을 답사하고, 이후 추기경이 몸담았던 여러 영적 거처들과 안식처를 찾아 나선다. 왜 그랬냐 하면, 평생을 번민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깊숙한 생채기를 남긴 자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소설은 그 대답을 얻기 위한 몸부림의 여정과 같다. 그래서 추기경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던 것이다. 

“소설로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실을 취사선택했을 뿐 허구로 지어 낸 부분은 없다”는 한씨의 얘기처럼 《용서를 위하여》는 순수하게 그의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제6장 ‘기억의 늪’은 제주에서 집필 중이던 작가가 보안사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1주일을 50여 쪽에 걸쳐 사실적으로 되살렸다. 공항에서 수사관들에게 연행돼 끌려가는 차안에서 30분 동안 쉴새 없이 구타당한 것을 시작으로,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약 짜듯 쥐어짜는 고문·물고문·전기고문에 인격과 육체 모독까지 그는 그야말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해야 했다.

“그렇지만 고문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는 아닙니다. 사실 제가 당한 건 훨씬 심했지만 증언이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독자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소설에 필요한 만큼만 취사선택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용서와 화해에 관한 것입니다.”

“가해자들의 사죄 없이 용서가 가능한가, 주인공인 저 한수산은 소설이 끝나갈 때까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잊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용서는 신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마음에서 떠나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이기도 하구요”

작가는 “이제 마음을 추스를 때가 됐다고 생각하던 참에, 필화사건 때 함께 감금됐던 인사로부터 ‘이제 우리가 겪었던 일을 글로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황폐함을 어떻게 구원했는지를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용서’와 ‘화해’라는 화두 속에 녹여낸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