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논설위원 김노금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어지간한 일로는 도무지 눈물 흘릴 일이 별로 없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버이날을 앞당겨 다니러온 큰딸 내외와 함께 오랜만에 친정엄마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가 실컷 울고 난 후 몇 날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가슴 절절해 지던 몇몇 장면이 잊혀 지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에 조금씩 치밀어 오는 무엇인가가 있다. 옆자리에 앉아서도 예전처럼 어미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던 딸아이는 물론 남편과 사위 역시 훌쩍거리며 연신 눈물을 훔치던 걸로 봐서 친정엄마라는 이 영화는 당분간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5월 가정의 달과  함께 좋은 입소문을 탈것 같다. 
 

▲ 논설위원 김노금

무식하기 그지없고 시끄럽고 촌스런 그러면서도 딸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그런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그 징글징글한 사랑을 투정하는 딸은 내가 엄마 땜에 못살아를 입에 달고 살고 그런데도 그 잘난 딸 만보면 그저 좋아 웃는 엄마 김해숙은 엄마는 너 때문에 산디 워째야 쓰까를 입에다가 걸고 산다. 남편에게 잘못도 없이 맨날 맞고 사는 엄마가 안쓰러워 도망을 가든지 아니면 차라리 이혼이라도 하라는 딸에게 시집가서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와 속 풀이 할 곳은 있어야 한다며 웃는 친정엄마.

내가 엄마 땜에 정말 못살아는 꼭 이런 대목 다음에 나오는 딸의 대사이다.

박진희라는 예쁜 배우와 이 영화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민엄마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한  김해숙의 가슴 절절한 감정교류와 티격태격 나누는 모녀지간의 사랑은 영화가 중간으로 접어들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때론 속사포처럼 쏘아대다가도 때론 은근슬쩍 눙치기도 하고 때론 너무나  평범한 우리네 친정엄마들과 닮은 천연덕스런 모습에 박장대소하며 때론 멈출 수 없는 눈물로 우리를 소리 없이 흐느끼게 만들던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몇 년 전부터 줄기차게 소설로 연극으로 드라마로 또 영화로 탐구되어지고 있는 우리들의 엄마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또 사회가 어지러워 알 수없는 심리적 불안감이 더 해 질수록 우리 모두에겐 무한하고도 넓은 무소불위의 존재로 기대고 싶고 안기고 싶은 그런 존재로 각인되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영화 ‘친정엄마’를 제외한 다른 엄마의 이야기와 엄마탐구는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의 존재가 그만큼 문제적이며 전형적인 엄마의 이미지에 다양한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지난 해인가 방송된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는 오늘날의  늙은 엄마가 처한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큰 관심을 끌었었다. 4대가 모여 사는 대 가족상황에서 좋은 남편이기는 하되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 끊임없이 벌어지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많은 식구들의 매 끼니를 무엇을 먹일까로 걱정이 끊이지 않던 엄마의 휴식선언에 우리들 50대가 넘은 많은 여성들의 환호는 실로 대단 했다.

극중 시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을 얻은 엄마는 당당하게 몇 개월인가의 휴가를 얻어 좋아했던 시를 공부하러 문화강좌에도 나가고 몸빼 바지를 벗어 던지고 레이스달린 예쁜 옷으로 차려입고 친구들 만나고, 예쁜 찻집에서 차도 마시고 하지만 집안은 뒤죽박죽 난리가 났었고 제발 원위치로 돌아와 달라는 가족들의 원성에도 고집을 부리던 엄마가 자기 스스로 가정에 복귀하면서 모든 것이 예전의 평온을 찾아간 그런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엄마이야기는 열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런 흐름을 통해 그동안 희생만이 엄마의 삶이다라고 웅변하던 엄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 해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문득 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이미 딸을 출가시킨 친정 엄마로서 영화 ‘친정엄마’를 보면서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며 몇 해 전의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의 휴가선언에 그토록 공감과 지지를 보냈던 이유는 무엇이냐고.

자식에게 주고 또 주고 온갖 것을 다 퍼내어 주고도 더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함의 친정 어미로서의 모정과 내 삶의 권리도 소중하건만, 육십이 훨씬 넘은 늙은 엄마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단 한순간도 쉴 수 없는 약한 여성에게 홀로 짐 지워진 가부장적 사회에 항거하는 뿔난 여성이 바로 나만이 아닌 우리 모든 여성들의 항변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