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의 세월
                                                                               논설위원 김노금

 늘 팔 다리 삭신이 쑤시고 결린다고  고통을 호소 하던 분이셨다. 몇 차례의 무릎 수술로 이제는 뒤뚱거리기까지 하던 걸음이었다. 그런데 팔십이 다 되어가는 친정 엄마의 어디에 저런 힘이 남아 있었을까? 자식들 가는 길에 도움이 된다면 내 등가죽이라도 벗어서 가는 길 위에 깔아주겠다 하시던 그 무시무시한 동물적 표현을 그저 어머니들은 무심히 하실 수 도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엄마는 그럴 수 도 있나 보다라고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었는데 언젠가 무심코 하시던 말씀이 이제사 새삼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 논설위원 김노금

눈이오나 비가 오나 새벽을 깨워 절대자 하나님께로 향하시던 그 발걸음, 새벽종소리로 울리던 눈물의 새벽기도.  두 손 모은 그 간절한 기도야 평생 하시던 거니까 그런다 치자. 오늘도 팔순이 다 되가는 노모는 큰 아들 선거 운동을 위해 여러 자식들을 독려 하시며 땡볕에도 아랑곳없이 노랑잠바에 운동화 끈 을 질끈 동여매시고 아들 명함을 챙기신다.

비위가 없기로 소문 난 분이셨고 생전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신 분이 아들의 선거에는 온갖 비위를 다 동원하셔서 넉살을 부리신다. 우리아들 선거 나왔어. 아짐이 도와 줘야 써… ○○ 오일장에 나오는 어르신들을 감싸 안고  얼굴을 부벼 대고 손가락 걸기를 하고 …  늙은 어머니에게 자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곁에서 지켜보는 자식들의 가슴이 차라리 아려올 정도이다.
 
모두들 그러 하겠지만 나 역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도 크다. 아버지는 세상을 넓고 지혜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어머니는 여자로서 가정을 세워가며 남편을 내조하면서 자식들 앞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셨다.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지극정성을 다하시던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썩 좋은 남편만은 아니셨다. 평생을 정치 주변을 맴도시느라 오직 바깥으로만 분주하던 한량이셨던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도 “느그 아버지 하시고 자픈 일잉께 잘하시도록 밀어나 드리자" 며 자식들을 다독이던 어머니 덕분에 오남매 모두 곁길 가지 않고 크게 비뚤어진 형제 없이 제 각각 제몫의 삶을 예쁘게 꾸려 살고는 있다.

그러나 아내의 무거운 짐을 들어 준다든지 자잘한 집안일을 도와준다든지 하며 살갑게 사시는 어르신을 뵌다거나 할 때는 자식으로서의 한스런 아픔이 없지 않다. 여자로서 가끔씩은 여느 여인들처럼 지아비와의 평범한 삶을 갈구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커가는 자식만을 바라보며 어머니로서의 삶에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오신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싸아 하니 치미는 형언하지 못할 서글픔과 아픔이 지금도 함께 한다. 겨우 제 한 몸 건사하며 사는 자식 인지라 남들처럼 번듯한 효도한번 해 드리지 못한  나는 요즘 왠지 자주자주 목이 메인다. 그 모질던 모정의 세월.........,
 
유난히 어머님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지는 달, 지난주는 친정엄마라는 영화를 보고 원 없이 울었는데 이번 주엔 모정의 세월 이라는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쏟은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은 동서고금과 시대를 초월해서 그 사랑의 본질이 다르지 않은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한다.

큰 정치를 꿈꾸면서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 남편에 대한 아픔과 그 어려운 길을 다시 또 걸어가는 아들을 지켜봐야하는 눈물겨운 사랑이 5월의 하늘아래 잠시도 당신의 육신을 편히 앉아있지 못하게 하는가 보다.

오남매 젊은 자식들은 영산포 장날 겨우 명함 한 장을 돌리면서도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이제 갑자기 따가워진 한낮의 햇볕을 피해 자주자주 쉴 그늘을 찾게 되는데 늙은 어머니는 조금씩 조금씩 사위어가는 목숨으로도 저렇게 당신아들 이름을 불러가며 5월의 한 가운데 날을 바람처럼 빠르게 날듯이 달려 다닐 수도 있는 것인가 보다. 어머니 가슴속에 이는 바람! 그 간절한 응원..아들아!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