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에서 서거까지 인생역정 전체를 기록한 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이 책을 펴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왔고 앞으로도 더 나오겠지만, 출생에서 서거에 이르기까지 인생역정 전체를 기록한 ‘자서전’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

《운명이다》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이해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등과 각종 인터뷰 및 구술 기록을 토대로 출생부터 서거까지를 일목요연하게 시간 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기록을 일관된 문체로 정리하는 작업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다. 유시민 전 장관은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꼬박 6개월 동안을 이 정리 작업에 매진했다고 한다.

‘출생에서 서거에 이르기까지 인생 역정 전체를 기록한 이 자선전’은 대통령 노무현이 그때 왜 그랬는지 하나하나 대답해주고 있지 않지만, 그의 삶 고비고비와 심경들을 살펴보면, 그가 그때 ‘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를 청문회 스타로 업어 올렸다가 금세 무자비하게 내팽개쳤던 언론, 한때 영웅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 아래에서 3당 합당을 지켜보며 뼈저리게 느꼈던 소회들, 각오들. 그가 왜 매번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자꾸만 왜 문제 제기를 하느냐”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언론과 지역구도와 싸움을 그치지 않았는지를 이 책은 뒤늦게나마 헤아려보게 하고 있다.

《운명이다》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는 자서전의 집필 시점(고인이 회고록 초안을 위해 메모를 시작하는 시점)인 서거 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다. 1부 ‘출세’는 출생에서부터 부산상고에 입학해 공부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 ‘꿈’은 부림사건을 맡은 이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게 된 이야기부터 정치에 입문해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경선에 나서기 전까지의 이야기가 담긴다.

3부 ‘권력의 정상에서’는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부터 대통령 재임기간의 일을 담고 있다. 4부 ‘작별’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꿈을 꾸고 실패한 후 서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필로그는 정리자인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상황을 정리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봤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라며 바꾸지 못한 세상에 대한 아쉬운 말을 남기고 있다.

검찰이 시시각각으로 조여오고 봉하 자택에 거의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던 그 당시 자신의 20년 정치역정을 돌이켜보며 노무현 대통령은 깊은 회한과 비탄에 잠겨 세상을 바꾸는 정치가 무엇이며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서전의 정리자인 유시민은 “2009년 5월 23일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 모른다. 1987년 6월 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청춘이었다. 양김 분열과 3당 합당,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에서 노년으로 늙어 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잃어버린 청춘의 꿈과 기억을 시민들의 마음속에 되살려 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던 시절에도 대통령을 마친 후에도 그는,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고 이 책에서 회고하고 있다.

노무현은 대통령, 정치인, 변호사, 진보 등등의 수식어를 빼고,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가진 한 인간으로 드물게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살고자 했던 사람, 굴복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변명하지 않던 사람,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사람, 그래서 여전히 인간 노무현이 그리운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패배자로고 말하고 물러났다. “우리 현대사의 존경받는 위인은 왜 패배자인가?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일인가?” 그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며,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