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염료는 이집트의 파라오나 로마 황실, 혹은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같은 최상층 신분들만 사용할 수 있는 값비싼 물질이어서 "황제의 염료"라고 하였다.

네로 황제는 자신만이 천연의 색깔을 사용할 수 있으며, 다른 누구든 천연염료를 쓰다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천연염색은 곧 고귀한 혈통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자주색 속에서 태어났다(born in purple)”는 표현이 한 예인데, 이 말은 비잔틴 제국에서 황녀가 자주색 옷감(티리언 퍼플 염료)을 두른 방 안에서 아이를 낳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 장홍기 관장

천연에서 얻은 염료는 고대부터 가죽, 양모, 면, 비단을 물들이는 데에 사용되었다. 인도에서 성소(聖所) 장식용으로 쓰이던 붉은색 직물과 소품들은 조개에서 만들어진 “티리언 퍼플” 천연염료를 사용한 것인데, 바그리(Vaghri)라는 카스트가 이 일을 전문으로 했다.

하지만, 천연염색은 세탁에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빛과 세탁에 잘 견디는 천연색을 얻기 위해 지역에 따라 다양한 소재의 매염제(媒染劑ㆍ섬유에 염료를 고착시키는 물질)가 개발되었다. 주로 명반이 쓰였지만, 그 외에도 크롬, 철, 소금, 식초, 가성 소다를 섞은 합성제도 쓰였다. 이런 물질들이 직물 속에서 염료를 꽉 ‘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물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mordre에서 매염제를 뜻하는 단어 mordant가 나왔다.)

당시에는 대단한 기술로서 매염제의 구성 성분과 정확한 함량은 오랫동안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만 전수되는 비법이었다. 이 매염제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직물에 아무리 색을 들이려 해도 세탁 과정에서 색이 바랬다. 따라서 오랫동안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인도 염색기술의 매염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안달이었다.
 
17세기 중반 오스만제국은 인도에 정기적으로 왕래하던 콘스탄티노플 직물 상인을 통해 그 비밀의 일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베나레스(오늘날 바라나시) 지역의 염색 기술자 한 명을 터키로 몰래 데려온 것이다.

터키의 아드리아노플은 면 생산과 천연염료 식물의 최적 재배지로서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는데, 이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염색공들이 천연 염색의 매염제 비법을 전수 받아 아주 아름다운 천연색 직물을 생산하여 터키와 유럽 모두에게 “터키 레드(Turkey red)”라 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 매염제 비법은 다시 1672년에 마르세유에 전파되었다. 이 도시의 아르메니아 공동체 내의 날염업자가 터키의 동족에게서 매염제 염색법을 전수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아름다운 색을 내는 인도 본토의 비법은 여전히 비밀이어서 각국 정부는 인도에 계속 스파이를 보내 이 매염제 비법을 알아내려고 했다. 18세기에 비로소 인도 염색의 비밀이 자세히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예수회 신부들까지 나서서 열심히 비밀을 염탐한 덕분이었다.

그 후 19세기에 들어서 화학적으로 생산하는 인공 염료 때문에 아메리카든 인도든 천연염료 생산은 파국을 맞았다. 이제 아름다운 색을 얻기 위한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가 만들어졌다. 황제와 귀족, 혹은 부유한 상인들만 누리던 색은 시민들에게 돌아갔고, 모든 사회는 무채색의 빈곤으로부터 풍부한 색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관장 장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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