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두려웠다면「PD수첩」 존재하지 않았다”

성역과 금기가 없다며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자임해온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의 PD들이 들려주는 못다 한 이야기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간판이라는 칭찬을 넘어, PD저널리즘의 선봉이라는 수사(修辭)를 넘어, 오늘날 한국언론 지형에서 심층 탐사저널리즘의 큰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며, 황우석 사건과 광우병 보도를 거치며 PD수첩은 한국언론 진실보도의 한 상징이 되었다.

이번 주 투데이 추천도서는 본지 창간 9주년을 맞아 20년 동안 80여명의 PD들이 자취를 남겼고, 1600여 개의 아이템이 방송된 우리시대 정직한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PD수첩」 방송초기 경영권 불법승계를 다루던 PD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대뜸 ‘어떻게 해드리면 방송이 안나갈 수 있냐’고 묻는 그에게 「PD수첩」 최초 기획자 김윤영 PD는 ‘이 얼굴로 여태껏 살아왔는데 쪽이 팔려서 앞으로 어떻게 삽니까’라고 반문하며 ‘제게 성형수술을 해주면’ 방송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답한다. 이 책의 첫 장면이자 「PD수첩」 역사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성역과 금기의 벽은 두텁고 진실을 가로막는 방법은 더욱 치밀해졌다. 그럼에도 「PD수첩」은 변하지 않았다. 만민교회, 검찰스폰서 등 한때는 성역이었지만 이제는 상식이 된 이야기들, 황우석 사건, 광우병 문제 등 한국사회의 속살을 드러낸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나 「PD수첩」이 있었다.

「PD수첩」은 한국사회에 PD저널리즘이라는 신용어를 탄생시키며, 기존 저널리즘과는 다른, 그 어떤 권부나 이해 집단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보도를 해왔다. 저널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연 「PD수첩」의 20년을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한국언론 지형의 20년사를 보는 것과 다름없다 하겠다.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그동안 국내에서 방송된 「PD수첩」의 핵심 PD들을 직접 만나서 취재를 한, 방송에서는 차마 전할 수가 없었던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시청자들에게 올바른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이 감내해야만 했었던 가슴 아픈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담아낸 책이다.

「PD수첩」을 탄생시킨 최초의 기획자로 이 프로그램에 닥쳐온 그동안의 위기와 시련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김윤영 PD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사이비 종교의 두 얼굴을 고발한 윤길용 PD, 시대의 문제를 목격하고 정직하게 전달한 김환균 PD, 광우병 보도와 함께 대한민국 검찰의 도덕성에 의혹을 제기한 최승호 PD, 황우석의 논문조작 사건을 다루며 혼란을 겪은 한학수 PD, 그리고 광우병 논란의 중심에서 미국산 쇠고기 검증문제를 공권력의 위험한 칼날과 맞서며 취재한 김보슬 PD, 미선이 효순이 사건 보도로 촛불집회라는 문화현상을 일으킨 최진용 PD 등과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PD수첩」 20년을 총 망라했다.

그들이 어떻게 진실을 목격하게 되었고, 끝까지 진실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이비 종교에 대한 취재를 하여 방송할 때 수백 명의 신도들이 MBC 주조정실에 난입하여 방송이 중단된 에피소드라든가, 온갖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PD가 경찰의 신변보호까지 받아야 했던 에피소드 등, 에피소드라고 부르기에는 좀 서늘한 사건들도 회고담에 담겨 있으며, 여러 가지 다양한 제작 뒷이야기들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또한 언론인데 대한 소송이나 구속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최근 사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담겨 있어서, 현 정부의 언론통제 시도가 얼마나 억지스러운지도 실감하게 된다.

송일준 PD는 방송환경이 “「PD수첩」이 시작되던 20년 전 그 시절로 급작스레 후퇴한 느낌마저 든다”며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 중에서도 법원과 검찰이 제구실을 못하는 탓도 적잖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PD수첩」 책임PD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PD수첩」의 초심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주갑 MBC 시사교양국장은 들어가는 글에서 “회고로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성은 다짐으로 후회는 회초리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쩌면 이 책을 읽을 모든 이들에게 호소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했던 다짐을 지키기 위해 늘 누군가를 인터뷰하던 그들이 인터뷰 대상이 됐다. 그들의 존재, 그들의 역사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언론 종사자로서 이 책을 보며 많은 부끄러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