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편에서 초록초록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 숨통이다 너에게로 가서 마음을 기대노라면 세월의 이파리마다 돋아나는 음계 위에 그리운 이름들이 새 떼로 날아와 앉는다 홍관희 시집 『사랑 1그램』, 에서

홍관희 시인   2024-11-25

그 팀원은 근무를 잘하고 있을까?끄떡하면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했고 쉬는 날도 마음은 출근을 해야 했던 월급쟁이 시절 짬밥이 늘면서 팀장이라는 보직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쩌렁쩌렁 단련된 구호를 더 오래 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할당된 영업목표를 달성하지 못

홍관희 시인   2024-11-10

네게로 가서 너에게 닿고 싶다 네 마음이 오는 한 길을 따라 아쉬운 내 인생이 줄지어 간다 너를 그리는 시간의 깊이만큼 네게로 가는 산 너머 노을이 깊다 우리는 서로를 소유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가서 닿을 수 있다 홍관희 시집 『사랑 1그램』,

홍관희 시인   2024-10-27

자형이 가족의 부축을 받고 내가 운영하는 드들강변에 있는 카페를 찾아와 수년 전 개업 초기에 앉았던 2층 테이블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수년 전 그날 바라봤던 강물이나 지금 바라보고 있는 강물이나 흘러가는 방향은 변함이 없

홍관희 시인   2024-10-13

오지 않는 형아야 길도 없이 길을 간다 물구나무서서 나를 웃기던 앉은 다리 형아야 너를 찾아 산길을 간다 길도 없이 헤매던 시절 엄금엉금 기어와 심장 속의 날 선 사랑 휘둘러 보이며 사람이 곧 길이라고 말하며 웃던 결코 울지 않던 형아야 마지막 그때

홍관희 시인   2024-09-30

곡선으로 말하는 강이 좋아 강을 즐겨 찾던 나는 주말이면 강물처럼 서정적인 가족과 함께 섬진강이 그어 준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며 곡선으로 말하는 강의 물기 어린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벚꽃잎 난분분 난분분 은혜처럼 내리는 강변도로 구불구불 달리는

홍관희 시인   2024-09-08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 강이 흐른다 그대와 나 사이 흐르는 강물 위로 그리운 꽃 한 송이 피어나 그대와 나 사이 꽃향기로 묶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이 채운다 홍관희 시집 『사랑 1그램』, 에서

홍관희 시인   2024-08-25

바다와 하늘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경계선을 긋고 수평선이라고 불렀다일출과 일몰 때면 수평선은 화약고가 폭발한 듯 불바다가 되곤 하였다에너지의 원천인 태양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에너지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벌겋게 달아오른 칼날 같은 수평선은

홍관희 시인   2024-08-12

결혼기념일 30주년을 축하한다며 아들과 딸이 제주 여행길을 열어 주었다너무 많은 것을 봐 버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성산포에서 수평선을 열고 올라오는 해를 오래 보고 있었더니 지는 해가 보였다이튿날은 반대 방향에 있는 협재해변에서 수평선을 열고 들

홍관희 시인   2024-06-23

아버지 만나시기 전에 곱디고운 처녀셨던 어머니 아버지 먼저 가시자 마음 비우시고 빈 들에 바람을 풀어 놓으시네 어둠의 시절 역사의 뒤안에서 헤매다 해방되어 상처 깊어지신 아버지 젊음 질긴 사랑으로 휘감아 일으켜 세우시고 손금에도 없는 구겨진 세월 마시

홍관희 시인   2024-06-09

드문드문 내려앉는 햇볕을 쪼개어 쬐며 풀잎 같은 걸음으로 하루에 하루를 산다발걸음 옮긴 만큼 남은 길은 짧아지고 가 버린 것들과 다가올 것들에 대한 경계 쯤에서나만 한 크기로 묵묵히 흐르고 있는 드들강을 찾아 강물 위에 풀꽃 같은 시를 쓴다쉬이 보이지

홍관희 시인   2024-05-27

봄날이 오니 꽃 한 송이 피네 가슴속 기슭 깊숙이 눈물겨운 꽃 한 송이 길은 꿈꾸는 자에게만 보인다는 말과 함께 뜨거운 봄 햇살로 산산이 부서져 간 그대 내 삶 속에서 꿈꾸는 섬으로 떠돌기도 하고 길이 되고 노래가 되기도 하더니 그대 떠난 봄날이 다시

홍관희 시인   2024-05-12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로 난 일생 동안의 길들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몸 밖으로 나가 영원으로 닿는 길 하나를 내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일생이 우루루 한꺼번에 몰려왔다 한꺼번에 떠나갔다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로 난

홍관희 시인   2024-04-29

더는 비울 수 없는 빈 바다 이 세상 덧없이 사랑한 사람들 물소리 따라 깊어졌는가 가고 오지 않는 이름 찾아 끝끝내 참아 온 그리움 한 세월 내 여기 멍든 가슴을 풀어라 기다림 그치자면 더 큰 기다림 머물수록 더욱 물노래에 젖으며 내 사랑 민둥 섬 되

홍관희 시인   2024-04-14

한 세상의 징검다리를 외발로 딛고 선 저 백로도 그랬을까 시를 앓고서부터 하루도 시를 놓지 못하고 한시도 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어제도 오늘도 시를 품고 살다가 이리 가도 그 길 저리 가도 그 길 사유의 주름살을 겹겹이 늘리는

홍관희 시인   2024-03-25

“진달래꽃이 피면 다시 오겠습니다”인두화로 새겨진 유언 같은 문장 한 줄 기억회로를 쉼 없이 순환 중인데산야를 흘러내리는 꽃물이 새들의 울음을 적셔대도 진달래꽃이 피면 다시 오마던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앞산 뒷산에서 꽃들은 오고 가고를 반복하였으나 나

홍관희 시인   2024-03-10

“매화꽃을 닮으셨군요”미안한 일이 발생했다 매화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어느 손님으로부터 듣게 된 것이다꽃에 비유될 이미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내게 이런 얼척없는 비유를 막 던지는 분도 계시는구나 그것도 앞장서서 봄 창을 열고 오는 어마어마

홍관희 시인   2024-02-26

그녀와 함께 사는 동안 그녀에게서 사랑 1그램을 건네받았습니다일생 동안 근육을 키워 온 마음으로도 다 받아 들기에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사랑 1그램내 모든 것을 내어 주어도 그 빚을 다 갚을 길이 없을 것 같은 그녀가 내게 준 사랑 1그램을 떼어 먹으

홍관희 시인   2024-02-04

가난은 휴일도 없는지 일꾼이 되라 일꾼이 되라 하고 엄동설한 난방을 해 봐도 좀처럼 금고의 온기가 오르지 않았다 손님에게로 향기로이 스며들어야 할 커피는 침묵이 깊어진 그라인더에 갇힌 채 엄혹히 다가올 분쇄의 시간을 묵상하며 쓰디쓴 운명을 무지개 맛으

홍관희 시인   2024-01-21

사는 동안 건너야 하는 강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5분 거리에 있는 남평역에 닿으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너고서야 닿을 수 있는 곳이 남평역만은 아니다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너에게로 가 닿기 위해서도 강을 건너야 한다 나는

홍관희 시인   202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