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교수 윤 형 숙

4. 수입산 삭힌 홍어요리의 대중화와 전라도 정체성

품귀현상으로 소수의 특권층만이 소비할 수 있던 홍어를 일반인들도 비교적 싼 가격으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 중국, 칠레 등에서 홍어가 수입되면서 부터다. 특히 1992년 이후 칠레산 홍어가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홍어소비가 대중화되었다. 칠레산 홍어는 서식조건이 한국산과 비슷하여 국내산과 맛이 크게 다르지 않아 각광을 받았다. 수입홍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칠레산 외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러시아, 포클랜드 산 등 여러 나라 홍어가 수입되었다.

수입홍어의 전국적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보관, 가공 및 판매 방식의 획기적인 개발이다. 수입홍어를 손질하고 소포장하여 인터넷, 택배, 대형 마트 등을 이용하여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이 홍어 유통업자들에 의해 개발되면서 전국에 있는 일반 소비자들이 가격의 부담 없이 손쉽게 홍어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입홍어는 또한 뷔페음식점, 예식장과 장례식장, 일반 홍어요리점 및 한정식 식당 등을 통해 대량으로 유통·소비된다. 홍어무침이나, 홍어삼합은 예식장과 장례식장에서 접대음식뿐 아니라 뷔페음식점과 한정식 코스의 요리품목이 된다.

뷔페, 예식장, 장례식장, 한정식 요리점 등을 통해 홍어소비와 소비계층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전라도 홍어요리는 삭힌 홍어와 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와 한 쌍을 이루는 삼합으로 이해된다. 전라도 안에서도 홍어를 먹느냐는 질문은 삭힌 홍어를 먹느냐는 것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전라도 사람은 싱싱한 홍어회는 먹지만 삭힌 홍어는 못 먹는다는 단서를 단다. 홍어를 먹는다는 것이 삭힌 홍어를 먹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삭힌 홍어의 대중화와 전국적 소비의 확산 과정에서 홍어의 삭힌 맛 또한 동질화 된다. 지나치게 삭힌 홍어는 예식장, 장례식장에 온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 수 없다. 과거와 달리 잔치나 장례에 온 사람들 중에는 같은 지역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국적이고 색다른 음식을 먹어 보기 원하지만 냄새와 맛이 너무 강하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한정식 음식점, 심지어는 홍어 전문음식점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너무강하게 삭힌 홍어는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삭힌 홍어요리를 만들게 된다. 『식객』이라는 유명한 만화에 나오는 실제 모델인 홍어음식점 ‘순○길’의 홍어도 강한 맛이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전라도식 삭힌 홍어를 파는 집으로 유명하지만 주 고객인 주변의 직장인들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삭힌 맛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지역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동질화된 홍어 맛은 진짜 전라도식 홍어 맛에 대한 경험이나 기억을 없애지 못한다. 어떤 점에서 동질화되고 변질된 홍어 맛은 진짜 전라도식 삭힌 홍어 맛에 대한 담론과 욕구를 증폭시킨다.

“톡 쏘는 맛, 코가 뻥 뚫리는 맛, 입안이 얼얼한 맛, 매콤 쌉싸름. 질리는 맛, 코에 팍 질리는 맛. 머리까지 뻥!~ 뚫리는 그런 맛, 입이 헐 정도로 독한 맛, 많이 삭힐수록 오리지날 한 것, 한 번 맛들이면 계속 생각나는 맛. 와사비처럼 쏘는 맛, 씹을수록 향이 우러나고 탄력 있고 탁 쏘는 맛이 일품…”이라는 전라도 홍어의 진짜 맛에 대한 담론이 인터넷 사용자, 미식가, 음식 관광객, 홍어 매니아 동호회, 맛 칼럼니스트 등의 블로그, 신문과 방송 등을 통해 생산·재상산 된다.

소설가 황석영은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버리는 맛의 혁명”이라 말한다. 홍어의 독특한 맛은 음식을 주제로 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연속극 ‘대장금’에서 주인공 장금은 “마마님, 자꾸 씹으니… 맛이 납니다. 처음에 코 끝이 찡하고 다음에 입안이 상쾌하고 끝 맛은 청량합니다.”라고 말한다. 장금이의 멘토인 한상궁은 “장금아! 홍어의 살과 간은 머리를 맑게 하고 소화를 촉진시키며 성인병을 예방하느니라”라고 대답하낟. 삭힌 홍어는 오묘한 맛이 날 뿐 아니라 몸에 좋은 웰빙 음식도 되는 것이다.

삭힌 홍어에 대한 담론은 홍어라는 자연 상태의 원료를 삭히는 기술이 홍어를 ‘전라도의 홍어’로 바꾸어 주는 중요한 매개자로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삭힘의 기술에 전라도에 있는 한 모든 잘 삭힌 홍어는 비록 그 원료가 수입산이더라도 ‘전라도의 토속 홍어’로 변환될(transformed) 수 있는 것이다. 생물홍어와 숙성홍어의 화학적 구성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홍어 명인 1호로 선정된 나주의 안○현 사장(52세)은 나주 영산포에서 삭힌 홍어요리가 가장 잘 발달했으며 나주 홍어가 진짜 우리나라 홍어요리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나온 나주 홍어에 대한 기록은 좋은 증거 자료로 제시된다. 흑산도에 귀향을 와 있던 시절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흑산홍어와 홍어의 효능에 관해 쓰면서 나주에서는 ‘썩힌’ 홍어를 먹는 관습이 있다고 기술하였기 때문이다. 『자산어보』의 기록은 나주가 진짜 삭힌 홍어요리의 원산지임을, 삭힌 홍어는 ‘역사성’을 가진 요리임을 증명해 주는 역사적 자료가 된다.

삭힌 홍어에 관해서는 조금씩 다른 여러 판본의 이야기가 있다. 전라도의 역사·환경적 배경과 얽힌 이 이야기들은 삭힌 홍어의 독특한 맛이 어떻게 ‘발견’ 되었는가 하는 것들이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의 노략질이 심하니까 조정에서 공도정책을 폈어요. 흑산도에 영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의 영산포라는 곳에 와서 살았어요. 홍어를 가지고 영산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 왔는데 오는 과정에서 흑산도에서 가져온 홍어가 삭은 거예요. 먹어보니까 기가 막히게 맛이 있어. 그래서 이제는 삭혀 먹어야겠다. 이렇게 된 것이지요.
박○준, 남, 37세, 신안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