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조교수 박 정 석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통상 ‘축제’라 불리는 이벤트 관광이 경제적 성장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은 축제를 지역정체성 형성과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역축제의 여러 자원 중에서도 토속음식은 대개 관광객을 끌어들일만한 특별한 매력요인이 없거나 있더라도 크게 매력적이지 못할 경우 축제의 중심적인 테마로 동원된다. 전남 지역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이미지 창출의 한 방안으로 토속음식을 관광 상품화하여 이벤트성 축제를 개최하는 곳이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증가하고 있다.

전남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홍어를 지역의 대표적 토속음식으로 내세워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곳이 나주시의 영산포와 신안군의 흑산도이다. ‘홍어’와 ‘축제’가 결부된 것은 홍어가 ‘영산포’ 또는 ‘흑산도’라는 지역 명칭에 나란히 따라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 홍어가 아니라고 여겨질 만큼 홍어는 두 지역과 밀접한 역학관계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영산포와 흑산도의 지방자치단체들과 지역주민들은 홍어를 지역의 대표상품이자 상징물로 부각하는 수단이자 장치로써 홍어축제를 내세우고 있다. 다음에서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영산포와 흑산도의 ‘홍어축제’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홍어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 지역의 축제와 연계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2. 영산포 홍어축제

현대사회는 교통통신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지리적 장벽이 붕괴되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공간 이동이 자유로워졌으며, 그 활동 또한 다양해졌다. 그러나 세계가 지구촌으로 불릴 만큼 지역 이동이 용이해졌지만,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지역적 속성에 매달리게 되었다. 즉, 한편에서는 지역적 다양성과 국지적인 특수성이 사라지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고유성과 차이가 양산되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의 음식 문화의 양상을 보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역적 혹은 문화적 경계가 없는 음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역 고유의 음식들이 줄기차게 개발되고 이미지화되고 있음을 광고나 이벤트성 축제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나라 식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음식의 종류와 식습관이 단순히 허기를 메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영양과 건강을 고려하는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음식은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급격한 ‘탈지역화’가 발생함으로써 가용음식의 다양화 및 수입음식의 증가가 이루어졌다. ‘음식의 탈지역화’는 음식의 종류, 생산방식, 소비유형들이 국제적 연망을 통하여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와 더불어 어떤 지역에서는 탈지역화된 음식이 ‘재지역화’ 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정체성 유지와 경제적 수익 차원에서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음식의 탈지역화와 재지역화의 전형은 영산포의 홍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칠레나 미국 등지에서 수입한 홍어를 영산포에서 가공하여 ‘삭힌 홍어’로 상품화한 것은 탈지역화된 음식이 재지역화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입홍어를 가공하면서 영산포는 숙성 홍어의 생산지로 새롭게 자리매김 되었다. ‘숙성 홍어’의 상징성과 상품성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지역주민들의 의지와 맞물려 지역축제의 중심적인 주제로 발전되었다.

 1) 영산포와 삭힌 홍어

영산포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년대까지 소금과 젓갈을 싣고 들어오는 배와 가마니, 면화, 쌀 등을 싣고 떠나는 배로 선창이 붐빌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되면서 영산포는 일본인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전라남도의 새로운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 영산포는 영산강 뱃길을 따라 서해안 도서지역에서 포획한 어류와 젓갈류가 모여드는 집산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육로와 철도의 발달은 수운 교통의 침체를 불러왔다. 또한 1972년 영산강 하구언 공사가 시작되면서 영산포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구언 공사가 완료된 1976년 이후 영산포는 포구로써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홍어 집산지로서의 명성도 함께 사라졌다.

영산포에서의 홍어 소비는 1363년 흑산도에 소개령이 내려지고, 흑산도 인근 영산도 사람들이 지금의 영산포 지역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과거 동력이 없는 풍선을 이용하여 잡은 홍어를 소비지인 영산포까지 운반하는데 많은 시일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내륙에 위치한 영산포는 운반 도중 이미 숙성된 홍어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싱싱한 홍어를 소비하는 도서지역 및 서해안 지역과는 달리 영산포 인근 지역에서는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영산강 뱃길을 따라 이송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삭혀진 홍어가 영산포의 별미가 되면서 이곳에서는 홍어를 맛있게 삭히는 방법 또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홍어는 알맞게 토막을 내어 항아리에 밀봉해서 삭히거나 통째로 삼베더미에 싸서 두엄이나 지푸라기 속에 넣어 삭히기도 한다. 발효된 홍어는 살이 쫀득쫀득해지면서 톡 쏘는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질소 화합물인 요소와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산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홍어를 삭히면 부패세균 성장을 억제하여 음식의 보존성을 높이고 식중독 위험을 방지하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삭힌 홍어는 저지방 고단백 알칼리 음식으로 신선한 홍어에 맞먹는 ‘영산포다운 음식’이 되는 것이다. 나주 인근 사람들이 삭힌 홍어를 즐겨 먹었으며, 그 효능에 대해서는 『자산어보』(1814)에 기술되어 있다.

나주(羅州) 가까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즐겨 썩힌 홍어를 먹는데, 지방에 따라 기호(嗜好)가 다르다. 배에 복결병(腹結病)이 있는 사람은 썩은 홍어로 국을 끓여 먹으면 더러운 것이 제거된다. 이 국은 또 주기(酒氣)를 없애주는 데 매우 효과가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