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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안전이 있어야 개인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라 하겠다. 그의 스승이자 장인이 되는 임억령은 반도의 땅 끝 해남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홀로된 어머니의 억척스런 교육열로 자식들만큼은 새롭게 태어난다.
임억령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8세에
능히 시를 지을 정도로 남다른 재주가 뛰어났다. 자식들 교육에 관심이 지대했던 어머니는 그를 광주로 데려와 눌재 박상과 육봉 박우 형제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게 했다. 아들의 재능을 알아차린 지극한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만난 박상은 임억령의 정신적 지주로 많은 감화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인정미가 오간 시가 여러 편 남아 전해오고 있다.
박상은 도학자로서 지녔던 인품과 의리와 지조 있게 지킨 명분중 시의 학자적 소신은 임억령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으며 강직하고 올곧은
성품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담양부사로서 이곳 성산에 내려온 석천은 사위이자 제자인 김성원이 지어준 식영정에서 성산시단을 열고 불후의
명작을 토해낸다. 오늘날에 들어보아도 심금을 울려주는 주옥같은 서정시의 세계를 마음껏 펼친 그의 시중에서 대표작이라 할 만한 식영정 20영중의
하나를 읽어보자.
서석산(지금의 무등산)에 걸친 구름이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일치하고 공감이 되는 것은 그의 한시가 자연과 함께
화려하고 때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라 하겠다.
식영정의 뒤뜰로 들어서면 배롱나무 몇 그루가 처연한 모습이다. 호수 주변과 도로 옆
식영정으로 들어서는 입구 쪽으로도 백일홍이 보인다. 자미탄(紫薇灘)의 이름 값을 치르느라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제 문자 그대로 자미탄 다운
백일홍이 가득한 꽃길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광주호의 수면과 어울린 배롱나무의 매끈한 가지가 눈 맛을 시원하게 해준다.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잔잔한 호수의 물은 햇빛을 되쏘며 하얀빛으로 반짝인다.
답답한 심정은 사라지고 도시생활에 지친 몸을 청량한 기운이 돋게 해준다. 깊고 넓은 시의 세계로 궁리하고 생각하는 서정적 문학의 심오한
속으로 이끌어 빠져들게 한다.
그림자도 쉬고 있다는…
식영정(息影亭)!
사위가 장인어른에게 지어드린 정자 식영정은 자못 심각한 철학이 담긴 이름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 정자의 이름을 붙이는데도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장자에서 말하기를 옛날에 자신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아났다.
그런데도 그림자는 이 사람이 빨리 뛰면 빨리 쫓아오고 천천히 뛰면
천천히 따라오며 끝끝내 뒤에 붙어 다녔다. 그러다 다급한 나머지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났더니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과 그림자의 관계란 항상 함께 하지만 장인어른이 고매한 인품을 모두에게 나누어주어야 함에도 스스로 자기 빛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난다는 사위의 지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석천이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렇게 외진 두메로 들어온 것은 한갓
그림자를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니고 시원하게 바람을 타고 자연과 어울린 조화를 생각하며 끝없이 거친 들판에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고자 함이다.
그림자도 쉬고 있다는 의미로 ‘식영정’으로 부르자.”
결국 장인과 사위는 의견일치를 이루고 식영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식영정기’에 자세히
써 있다. 이때가 1560년(명종15)으로 장인의 나이 65세 때의 일이었다.
식영정은 이처럼 주옥같은 시가문학의 산실로서 너무도 당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중에서도 성산별곡을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자랑한다. 한국적 노벨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멀리 보이는 무등산의
모습과 미인송이라고도 부르는 적송에서 나오는 향기가 우리들을 매료시킨다. 광주호가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져 문학인들의 시심을 자극시킨다.
정철이 풍류시인 김성원을 위해 지은 시조가 성산별곡으로 이곳의 아름다운 사계절의 변화와 풍류가 멋지게 남아있는 노래라 하겠다. 푸른 잉크를
뿌린 듯한 광주호는 어찌나 짙은지 검은 색으로 찰랑거린다. 자미탄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21세기를 여는 신호음이다. 하얗게 반짝이는 광주호의
물결이 우리들을 어서오라 부르고 있었다.
/나주 중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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