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의해 복권된 이태준의 삶

소설가 안재성의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가 출간됐다, 한국근대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며 특히 현대소설의 완성자로 평가되는 이태준. 광복 후인 1946년 월북했다가 역사의 미아가 되어 사라진 이태준의 삶을 그가 남긴 자전적 소설과 수필, 언론의 취재나 타인의 회고담을 통해 추적한 책이다.
이 책은 이태준의 어린 시절부터 월북 이후의 삶의 궤적, 그리고 확실치 않은 말년 모습까지 남파공작원이나 탈북자 등의 진술을 통해 그려냈다.

서정주의 작가이자, 골동품과 고서적을 수집하는 복고적 취미를 즐기고, 계급문학을 주장한 ‘카프’ 작가들과 대립해 순수문학을 내세웠던 이태준은 해방 이후 뜻밖에도 월북을 선택한다. 그는 1946년 평양조소문화사절단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소련 방문은 이태준이 북에 남게 된 계기가 됐다.

이태준은 소련 사회주의를 그대로 재현할 북한에 대한 기대로 평양에 남는다. 그는 공산국가야말로 지상낙원이라 믿었다. 하지만 김일성과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써야했다. 작가로서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다, 그는 북한 평론가들로부터 일제기에 썼던 글에 대해 자연주의 작품을 썼다거나 감성적인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그의 환상은 북한의 현실 앞에서 여지없이 깨져나갔다.

전쟁 후 그는 결국 ‘인민의 적’으로 몰려 집필권을 박탈당하고, 그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생의 막바지에 이태준이 무엇을 생각했을지는 그가 글을 남길 수 없었기 때문에 수수께끼로 남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부족한 자료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추측에 의존해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태준이라는, 역사와 시대에 환생된 한 지식인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과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안재성 작가는 이태준이 1956년 무렵 정치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태준은 1956년 2월 조선노동당 평양시당 문화예술부 열성자대회에서 한설야 문예총 위원장에게 문예총부위원장 직위와 집필권을 박탈당한다.

이태준은 문예총 부위원장 등의 모든 직책에서 쫓겨나고 집필이 금지된 채 1957년 평양에서 추방돼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함남일보 교정원으로 배치된다. 이태준의 나이 54살 때다. 그러나 교정원 일도 얼마 못하고 함흥 콘크리트 블록공장 노동자로 배치된다. 정확한 직급은 파고철 수집노동자였다. 그는 1964년께 평양으로 귀환했으나 작품 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남파공작원 김진계는 구술자서전 〈조국〉에서 이태준을 1969년 5월께 만난 적이 있으며 당시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 지구에서 이태준 부부가 함께 살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탈북 작가 최진이는 1999년 이태준의 막내딸이 쓴 일기 내용을 들어 이태준 일가가 1974년에 장동탄광 노동자지구로 재추방 됐다고 증언하고. 1975년 이태준의 부인 이순옥이 뇌출혈로 쓸어져 3년간 누워 있다가 사망한 뒤 이태준도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태준은 김일성 형상화 소설 쓰기를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가족들 앞에서 “나는 작가적 양심과 타협하지 못하겠다. 김일성 소설은 정말 못쓴다. 김일성 체험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그의 글을 쓴다는 말이냐”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책은 1946년 8월 이태준의 갑작스런 월북을 다룬 대목부터 앙상해진다. 그 전까지는 이태준의 창작물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였기에 입체적 분석이 가능했지만, 이 무렵부터는 제대로 된 작품이 없어 지은이의 추정이 중심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