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에 옛 도심 신도심이 있을까 싶지만, 역 앞 1번 국도를 선으로 그어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곳과 반대편의 학교면사무소가 있는 곳과는 분위기가 극명하게 다르다.

 

면사무소 인근에 물레식당의 이름처럼 옛 도심의 길이 촌스럽고 정겹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학교 학다리에 같은 이름의 다리는 없고 둔기교, 쌍교, 제2쌍교, 곡창교라는 이름의 다리만 있다. 그러면 학교 학다리라는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아무튼 역 앞에서 건너편을 바라다보면 철골 탑마다에 그물망이 처져 있어 골프연습장인가 싶은데 학교다. 일러 함평골프고등학교. 〈청산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의 양성우 시인이 중학교 3년 동안 산을 넘어 걸어서 다녔다는 중학교는 폐교되고 그 자리에 있는 학교다. 골프 경기과가 있고 골프 지도자과도 있다. 골프인을 육성하는 학교로 신지혜, 이미향, 전인지, 장수연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나는 양성우 학생이 산을 넘고 들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는 길을 따라나섰다. 학교리를 벗어나 서당매 마을을 지나 산을 향해 가다 보니 길이 끝나고 함평 엘리체 컨트리클럽이다.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야 했다. 곡창리를 지난다. 마을 앞에 작은 저수지인 원곡제 둑에 늘어선 소나무와 정자와 함께 압권이다.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가 우거진 마을 숲을 더러는 보았는데 고풍스러운 소나무가 줄지어 마을의 멋을 더한다.

 

곡창리를 지나 영산강 사포나루에서 가던 방향을 나주 쪽으로 바꿔야 하는데 철인 3종 경기가 진행되는 관계로 다시 돌아서야 했다. 양성우 소년이 태어나 살았던 마을에 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다시 학교리로 돌아와 영화촌 삼거리에서 중천포로를 따라 엘리체 컨트리클럽의 뒤로해서 돌아드니 확 트인 넓은 들녘이 눈을 압도한다. 진례들이다. 장성에서 함평을 지나 흘러온 고막원천이 진례들을 적시고 나주 석관정 부근에서 영산강에 젖는다.

 

진례들을 지나면서 왼쪽에 뾰쪽하게 솟구친 산이 눈을 붙든다. 속금산이다. 171.3m로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래도 이름이 대단하다. 묶을 속束에 비단 금錦이니 말이다. 산행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영산강변 중천포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불러 1번 국도로 나가 122.7m의 옥마산과 속금산을 지나 진례들과 영산강을 바라보며 107.1m의 별바우산을 지나 중천포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교면은 서쪽에 함평천이 엄다천과 학교천을 만나 영산강에 이르고, 동쪽에 고막원천이 영산강에 이른다. 그 사이에 북의 옥마산에서 속금산, 별바우산이 남으로 이르고, 낮은 구릉과 넓게 펼쳐진 진례들. 동서로는 12번 무안광주고속도로, 1번 국도와 호남선 철길이 흐른다. 학교면의 남쪽을 흐르는 영산강은 시원으로부터 목포 고하도 바다에서 풀어지기까지 심한 S자 형으로 급격하게 굽이친다. 

 

이러한 환경이 시인이라는 감성의 터전이 되었고, 특히 집 앞으로 흐르는 영산강은 양성우 문학의 젖줄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시인의 마을은 별바우산의 서쪽 속금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사포나루와 석관정 사이에 있는 월호리 용호마을이다. 마을은 60.6m의 나지막한 산자락의 남쪽에 빙 둘러 자리한다. 그래도 산의 이름은 칼봉이다. 정면 강 건너 확 트인 들판의 저 멀리에 영암의 월출산이 선명하다.

 

시인의 집은 월호길 112-18 마을의 위쪽 칼봉에 접해있다. 뒤에는 커다란 동백나무가 우람하다. 학다리역에 내려 진례 동백나무집을 물으면 누구나 다 알았을 정도로 알려졌다고 한다. 조상이 이 마을에 정착한 것은 남원 양 씨가 무오사화 때 경기 시흥 부곡면에서 은신키 위해 칼봉의 서북쪽 망월동에 왔으나 자손이 번성해 칼봉의 남쪽인 월호리 용호마을에 정착해 지금에 이르렀다. 시인의 집은 팔렸고 다른 친척이 깨끗하게 단장해 살고 있다.

 

함평천지 함평은 녹두장군 전봉준이 고향에서 패하자 물러선 곳이 함평 땅이다. 갑오농민전쟁 때 양 시인의 증조부 고조부가 모두 나가 싸우다 전사했다. 이러한 집안의 피를 이었기에 4?19 혁명 시위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제적되고,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시 〈겨울 공화국〉을 발표해 교사 재직 중 파면되고, 긴급조치 9호로 수감되었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지조의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싶다.

 

갑오농민전쟁은 1894년에 일어났다. 이후 1910년에 한일이 병합되었다. 일제에 통치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된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경술국치니 국권 피탈이라 이른다. 일제는 열도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곡물의 수탈이 우선이었다. 김제 만경평야나 나주 호남평야의 곡물이 군산항을 통해서, 목포항을 통해서 실려 나갈 때 진례들의 곡물도 함께였을 것이다. 지금도 시인의 마을 별바우산 아래 일인 지주 소야少野네 집이 자리하고 있다.

 

소야네 집 앞 영산강변이 중천포다. 중천포 주변이 장탄長灘이다. 무안 몽탄이 꿈여울이라면 장탄은 전라도 말로 길다 보다는 진여울이다. 장탄에서 조금 아래가 곡창리 사포나루다. 인근에는 조선시대 전라도 수군 지휘본부가 자리했던 곳이다. 관광객이나 민물 낚시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어딜 가나 그렇듯이 교통수단의 발달로 이제는 이름만 나루다. 그러한 사포 강변에서 어린 양성우는 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