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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7. 바다에서 만난 날강도(47) 중국연안에 도착한 수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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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승인 2008.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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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내려가는 배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니 연이어져 있는 봉우리들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이어졌다. 높은 산봉우리는 하늘을 받친 채 바다를 껴안고 있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충분하게 보였다.

동풍이 불어 배의 방향이 한곳만을 보여준다. 봉마다 스카이라인에는 봉화대(烽火臺)가 연이어 있었다. 적의 침입이 있을 때 이를 신속하게 알리는 신호로 봉화(烽火)는 밤에 불을 피워 타오르는 불빛으로 위급 상황을 알렸고, 낮에는 불빛이 안보이므로 연기를 피워 올려 알리는 신호방법이다. 중국 땅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설마하니 중국인데 죽기야 하겠나.’

한나절이 지나자 바람이 빨라지고 더욱이 비까지 내렸다. 바람을 맞은 배의 속도가 빨라졌다. 배가 섬 사이를 달린다. 거대한 돌기둥처럼 꼿꼿하게 솟아오른 돌기둥 위에는 흙이 쌓여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천연의 분제 가꾸기다. 배가 돌섬에 부딪치지 않게 해야 했다.

두 섬 사이의 좁은 해역을 빠져나왔더니 수정호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크게 보이는 중선 6척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 해상의 날강도들로부터 홍역을 치른 다음이라 모두가 긴장하며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았다. 잔뜩 겁을 먹은 정보가 다가와 말했다.

“경차관님! 일전에는 관리로서의 위엄을 보여주지 못해 날강도들로부터 겁탈을 당하고 겨우 살아났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임기응변으로 관복을 갖춰 입고 저들에게 위엄을 보여주시지요. 마땅히 권도에 따라 관복을 입으시면 저들이 설마 해치기야 하겠습니까?”
“자네들은 어째서 예의를 훼손하는 일로 도리를 깨려 하는가?”

그러자 정보가 정색을 하며 다시 말했다.

“죽음이 바로 코앞에 이르렀는데 어째서 예의만 찾으십니까? 잠시 임기응변으로 살길을 찾은 다음에 예의로 상을 치른다고 해도 예의를 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목청을 가다듬은 최부가 말했다. 상제로서 상복을 벗을 수 없다며 그 이유를 말했다.

“거추장스런 상복을 벗는 것은 효(孝)가 아니며 더구나 남을 속이는 것은 신의가 아니네. 어쩔 수 없어서 죽을망정 어찌 효가 아니고 신의가 아닌 처신을 해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바르게 처신하고 그 다음에 오는 일에 대해서는 그때 순응하도록 하겠네.”

이번에는 총무 안의가 나서서 말했다. 한번 당했으면 말지 이번에 또 당할 수 없다는 뱃사람들의 한결같은 속마음이 담겨진 말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관복을 입고 관리인양 행세하며 저들에게 위엄을 보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다. 저들이 이전에 만났던 도적 떼 같다면 좋겠지만 만약에 양민들이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관가에 고해바칠 것이네. 그때는 무어라 할 것인가? 사람을 속이고 정직하지 못했다면 의심만 쌓일 뿐 일이 커질 것이네. 우리의 처신에서 의심이 없는 정직만이 우리들을 지키는 길이라고 여기네.”

잠시 후에는 우려했던 대로 여섯 척의 배가 수정호를 포위했다. 한 척마다 십여 명이 넘는 건장한 뱃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옷차림이나 말소리조차 하산(下山)에서 만났던 해적 떼들과 같았다. 그들이 먼저 글을 써서 수정호에 보내왔다.

“보아하니 여기 사람 같지 않은데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최부는 답서를 써서 정보에게 보냈다.

죽음보다 효와 신의를 강조하는 최부

“우리 일행은 조선 사람들로서 왕명을 받들고 섬을 순찰하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 가다가 폭풍을 만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도대체 어느 나라 무슨 바다입니까?”
“여기는 우두외양(牛頭外洋)으로 대당국 태주부(台州府) 임해현(臨海縣)에 속해있는 곳입니다.”

우두산(牛頭山)은 저우산 군도 삼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 중의 하나로서 산 아래에는 두 줄기의 물이 흐르는데 이곳에서 보이는 바다를 외양으로 불렀으며 당국(唐國)은 당시 명(明)나라를 뱃사람들의 습관대로 당이라 불렀다.

식수가 없어서 물을 마시지 못한 정보가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물 마시는 시늉을 해 보이자 그들은 가득 찬 물통 하나를 내던지듯 주고는 북쪽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산에 샘이 있으니 물을 길러다 밥을 지어먹을 수 있을 것이오. 혹시 배 안에 후추가 넉넉하면 조금 나누어주시오.”

최부가 대답했다.

“조선에서는 후추를 재배하지 않습니다. 애당초부터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를 저어 수정호에서 물러나더니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둘러쌓았다. 수정호는 오도가도 못 할 처지에 놓였다. 돌덩이를 이용해서 임시로 만든 닻을 내리고 정박할 수밖에 없었다. 최부와 안의, 최거이산, 허상리 등은 눈앞에 보이는 산을 자세히 관찰했다.

처음 보는 산이지만 조선의 산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이 바다 속으로 내밀었고 반대쪽으로는 한없이 이어진 것으로 보아 육지와 연결된 곳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하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아! 저기가 육지구나! 저기로 간다면 살아 날수 있을 텐데….”

그동안 최부 일행이 지나왔던 바다는 하나지만 물의 성질이나 빛깔은 곳에 따라 달랐다.

제주 앞 바다는 짙푸르고 깊어서 물살이 급하고 사나웠다. 다행이 바람은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어서 파도가 높지 않아 배질하기에는 두려움이 없는 곳이라 하겠다. 흑산도 서쪽 바다처럼 비슷한 상황이다.

첫날부터 떠돌기 시작한 배는 나흘째부터 하얀색의 대양으로 떠돌았다. 이틀이 더 지나자 다시 더 희어지더니 푸른색으로, 또다시 흰빛으로 변했다. 중국연안에 가까워지면서 적색을 띠었고 하루를 더 지나고 난 후에는 검붉은 색으로 흐리게 보였다.

바다 색의 변화를 기록해 둔 것은 아무런 항해 장비가 없는 그 시절 배의 위치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였던 것이다. 황해 바다의 위치에 따라 물의 색깔이 조금씩 달랐던 것이다. 최부가 풍랑에 휩쓸려 황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정신을 잃고 할 일없이 떠돌기만 한 것이 아니다.

주변을 살피고 또 기록해 가면서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려온 것이다.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한 이후에는 바람이 세게 불어도 파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고 흰색으로 변한 곳에서는 돌섬도 보았다. 섬 전체가 온통 돌로 이루어진 암초덩어리 섬인 것이다.

큰돌의 꼭대기에는 흙이 있어서 온갖 꽃과 풀이 어우러지고 초목이 무성했다. 천만다행으로 암초지대에서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물결이 잔잔하여 큰바람이 아니라면 격랑에 휩싸이는 화만큼은 면할 수 있었다.

다만 배의 앞부분이 바위에 부딪치지 않게 운행을 조심해야 배가 깨지지 않는다. 조금만 방심해도 암초에 얹히거나 뱃머리를 부딪치게 된다. 이런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뱃머리로 나와 장대나 막대로 암벽사이를 밀치면서 지나갔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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