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강도들을 만난 이후 다시 시작한 표류에서는 첫날 시작했던 표류처럼 험악한 풍랑에 시달려야 했으며 가까이에는 섬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해마다 정월은 무서우리 만치 혹독한 강추위가 바다를 못살게 구는 시기로서, 거센 바람이 세찬 소리를 내고 집체보다 더 큰 파도는 천지를 뒤 짚어 엎으며 뱃전을 때린다.

  “처얼썩 철-썩 쏴-아.”

아무리 뱃심 좋은 자라도 배 타기를 꺼리는 계절이다. 그러나 최부에게는 상복을 입는 자로서 뱃길의 좋고 나쁨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

시가 급하게 초상을 치러야 하는 죄인의 신세였다.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배를 저은 것이 크나큰 잘못이었다.

이른 아침 날이 밝아올 무렵 수정호를 둘러쌓고 있던 배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최부를 보자마자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데 나를 따라 오시겠습니까? 대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귀한 물건이 있으면 모두 저를 주시오.” 

벼룩의 간을 빼먹을 간사한 짓이다. 난파당한 배에 무엇이 있을 소냐. 겨우 목숨을 건진 것만도 다행이고 죽지 못에 겨우 숨만 쉬는 궁핍한 상황이다. 최부가 대답했다.

  “표해를 시작한지 여러 날이 지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모두 바다에 흩어져 버렸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살아날 길을 가르쳐 준다면 이 배를 가져가도 좋습니다.”
  “어떻게 가르쳐 줄까요?”
  “먼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어디에 있습니까?”
  “관청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신다면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1리만 더 가면, 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인가가 있는 곳까지는 가까운 거리로 쉽게 갈 수 있다고 했다. 최부는 그곳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태주부까지 180리쯤 됩니다.”

  어떤 이는 150리쯤 된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 240리쯤 된다는 이도 있었다. 도대체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조선에서 십리는 4km로 1리는 400m이다.

명나라에서 십리는 5km로 1리는 500m가 된다. 서로 다른 환산이 얼른 되지 않는 데다 사람마다 대답이 각각 달라 믿음이 떨어졌다.

그때였다. 돌연히 그들은 무단으로 선실을 들어가더니 닥치는 대로 집어가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떼도둑으로 변한 것이다. 그들의 짓거리에 어이가 없었다.

  “우리를 따라오라는데 말을 안 들어 이런 것이요.” 

소심한 안의가 말했다.

  “이미 깨진 배는 미련 없이 버리고 저들을 따라 갑시다.”

  그러자 분기탱천한 이정이 나서서 말했다.

  “분통이 터져서 못 참겠습니다. 앞에서 날뛰는 한두 놈을 해치우고 도망칩시다.”

  최부는 반대하며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두 사람의 계략은 모두 틀렸다고 했다. 저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자네들의 계략은 모두 틀렸네. 저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들어보니 부실하기 그지없네. 날강도처럼 날뛰며 너무 심하게 굴지 않는가.”

  함부로 대하는 그들의 무례함에는 금도를 넘어섰다. 저들이 만약에 하산에서 만났던 해적 떼와 같다면 안의의 계략처럼 그들을 따라가면 그들은 틀림없이 우리를 죽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적들의 눈을 피해 산 속으로 피신

  그리고 저들이 만약 어선이거나 또는 해양 방위임무를 맡은 배라면 이정의 말처럼 그들은 반드시 자신들의 행위를 감추고 도리어 우리가 사람들을 협박하여 죽였다고 억지 말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국의 해안 방위가 소란해지는 것을 빌미로 우리들을 무고해서 도적으로 몰고 갈 것이 뻔해 보였다. 현재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 변명하기도 어렵고 결국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자네들의 계략은 모두 죽음의 길을 자초할 것인즉 주변을 살피고 정세를 보아가며 대응하는 것이 좋을 듯하네.”

  말을 마친 최부는 이번에는 약탈 질을 하고 있는 저들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들은 바다를 떠 돈지 너무 오래되어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고초를 이기며 기진맥진한 상태입니다. 여러 날을 굶었으니 밥이라도 지어먹을 생각입니다. 기력을 회복한 다음 가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머물면서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들은 노를 저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수정호를 둘러쌓고 있는 그들의 흉측한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비가 계속 내리자 감시하던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을 부라리며 무섭게 쏘아보며 지키던 그들은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선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최부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저들은 아무리 보아도 도적 떼 같았으며 여차하면 죽이러 달려 들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살아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마음의 결정을 한 최부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의 말과 행동거지가 황당하기 그지없소. 눈앞에 보이는 산을 보니 분명히 사람이 사는 마을과 통할 듯하오. 이런 때일수록 함께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목숨은 저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 것이며, 바다의 물귀신이 되는 길 뿐이요.”

  최부는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모두 내 뒤를 따르도록 하라.” 

 제일 먼저 최부는 나주에서부터 함께 한 배리들을 이끌고 배에서 내렸다. 군인들도 신속하고 소리 없이 따라 내렸다. 다행이 최부를 감시하고 있던 배에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홀한 감독을 틈타 배 안의 중요한 짐은 서로 나누어 갖고 등에 짊어졌다. 모두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한 줄로 몸을 낮추고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감시하는 자들에게 들킨다면 그 순간 끝장이다.

  배를 탄 이후 정확하게 보름만에 땅을 밟은 것이다. 보름동안의 생지옥에서 탈출한 샘이다. 살아서 두 발로 육지에 서있다니 꿈만 같았다. 모진 목숨은 건졌으니 길만 찾는다면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란 용기가 솟아오른다. 설마하니 중국 땅인데 죽이기야 하겠는가.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