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움직이는 화약고’라고 불리던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공필성 선수를 보는 재미는 대단했다.

실수가 잦아 ‘이적행위’도 많이 했지만 워낙 열심히 경기를 했기 때문에 팬도 많았다. 진루하려는 욕심으로 몸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조금도 피하지 않았더랬다. 조금 오래 왰지만 MBC 청룡에서 뛰던 김인식 선수도 그런축에 속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 프로야구는 어수룩하고 뭔가 허점을 약간씩 보이던 초창기보다는 경기력도 좋아지고 진지해졌으며 몸도 더 많이 생각하고 분석도 많이 하는 쪽으로 중심이동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진지함이나 승부욕이 너무 지나쳐 언론들마저 종종 「삼성-두산, 한국시리즈서 진검승부」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진지해져도 ‘진검승부’라는 표현은 곤란하다.

이 말은 우리 사전에 없다. ‘진검승부’는커녕 사전에서 ‘진검’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옛날부터 그냥 ‘칼’이면 됐지, ‘진짜 칼(진검)’이라고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진검(眞劍)’은 가짜 칼이 많은 나라에서나 필요한 용어일 뿐이다.

‘진검승부(眞劍勝負)’는 일본말이다. ‘진검승부’가 아니라 ‘신켄쇼부’라고 읽어야 한다. 뜻은 ‘진짜 칼로 하는 검도 경기’, 혹은 ‘목숨을 걸고 하는 진지한 승부’(『프라임 일한사전』, 두산동아)다. 달리 말하면, ‘지면 죽는다’는 것이고 조금 약하게 이야기 해도 '지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우리한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상황인데, 우리말로는 ‘한판 대결’이나 ’정면 대결’쯤이면 충분하다. 이 정도면 되는 말을 두고 굳이 일본식 표현까지 빌려 와 ‘목숨을 걸고 진짜 칼로 싸운다’고 말하는 것을 일러 ‘매국적 과장법’이라 한다면 과장일까.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