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필종부’, ‘삼종지도’, ‘현모양처’, ‘출가외인’, ‘칠거지악‘, 이 말에 가려진 우리가 너무도 몰랐던 절반의
역사!
우리 역사 속에서 ‘출가외인’과 ‘여필종부‘가 바람직한 여인상의 전형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불과 300백여 년 남짓한 기간에 불과했다. 이
기간 이외에도 남성이 우위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들의 삶을 순전히 남성들의 삶에 종속시킬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역사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억압 이념에 종속되었던 것도 아니었고 모든 여성들이 남성들의 억압 속에서 신음한 것도 아니었다. 많은 여성들은 남성 지배구조에
순응하여 살아갔지만 일부 여성들은 이런 지배구조에 저항하거나, 거꾸로 남성들을 지배하기도 했다. 모든 역사서는 남성들이 썼기 때문에 한 여성의
실제 삶보다 훨씬 종속적인 인물로 그려지거나 그 의미가 대폭 축소되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의 실제적 삶을 추적해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책 서문 중에서-
역사학자 이덕일의 맵고 자유로운 붓끝이 이번엔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을 품어 안았다.
이 책은 신사임당을 비롯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성 지배구조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고려
천추태후는 나라를 대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지각 있는 여성이었는데도 ‘김치양과 간통한 음녀’라는 이미지가 꼬리처럼 붙어 다닌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김치양과의 사통관계만을 강조해 음녀로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은 ‘남편을 셋이나 갈아치운 색녀’, ‘골품제 덕에
임금이 된 여자’라는 이미지로 왜곡돼 있다.
무왕을 도와 대제국 백제 건설을 꿈꾼 킹메이커 선화공주, ‘주몽’ 드라마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나라를 두 개나 개창한 소서노, 임금 위의
임금 신라의 여인천하 미실, 조선의 개방을 주장한 소현세자빈 강씨. 천민에서 귀족으로 신분상승 한 뒤 천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노력한 정난정,
여필종부의 이념을 거부하고 예술가의 자유를 추구한 나혜석, 남편을 버리고 당론을 좇은 혜경궁 홍씨,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남인정권을 수립한
여종의 딸 장희빈, 부덕이념으로 조선여성을 지배한 안방의 제왕 인수대비 한씨, 여성억압과 불평등 사회의 저항 시인 허난설헌, 태흥왕조의 공동
창업자 원경왕후 민씨, 조선 말기 재산을 사회사업에 바친 김만덕을 비롯해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의 이야기가 파란만장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책에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대의 벽을 넘어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딛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여인들의 삶과 도전, 좌절과 성공, 불꽃같은 열정과
성취의 기록으로서 주목받지 못하고 잊힌 25명 여인들이 실체를 추적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은 이 땅에 태어난 여성들이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출가외인’과 ‘여필종부‘의
길을 거부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당당히 살고자 했던 여성들의 삶과 도전, 성공과 좌절을 재조명한 이 책은 현대여성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에도 여전한
남성 중심사회에 대한 도발서(書)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모든 역사는 남성들이 썼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여성들의 삶이 실제 삶보다 그 의미가 축소돼 알려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 책을 ‘여성과 남성이기 전에 인간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한 것이다.
’감성‘이나 ’이론‘이 아니라, 철저히 역사적 현장에서 퍼 올린 페미니즘이라서 더 반갑고, 이야기는 생생하게 다가온다. 적잖은 인물을 한 권의
책에 함께 소개하면서도, 탄탄한 사료를 보태 긴장감을 담아낸 수작이라는 평가다.
저자 이덕일은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3』, 『조선최대갑부 역관』 등 한국사의 쟁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서와 생존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나 승자의 역사에 묻히고 왜곡됐던 인물들을 찾아내 재해석하는 책들을 펴냈다. 그는
풍부한 자료와 흥미로운 서술로 많은 책을 써내며 역사학을 대중의 품에 안겨준 사학자로, 인문적 글 쓰기의 새 영역을 개척한 저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재야 사학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