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도로 개설·IC인접 발전가능성 높은 문평면의 행정·경제·교통 중심

▲ 우시장이 섰던 문평장은 농작물을 말리는 빈 터만 남았다.

 

안곡1리 안영마을과 한마을을 이루었지만, 면사무소며 농협·5일장이 들어서고 지방도 825호선이 생기면서 문평면의 행정과 경제, 교통의 중심지가 돼 ‘새로운 안영’이라는 의미의 ‘신안마을’이라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마을 동쪽 오룡리에 살던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을 연구하여 시험했던 남해바다의 물길이 지났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거북선의 정신을 이어 일제 강점기 전라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을 한 공로로 건국포장(1977)과 애국장(1990)에 추서된 독립투사 정동근 선생(1867-1945) 추모비가 면사무소 건너에 우뚝 서 있다.

 

황토찜질방이 문을 연 2008년부터 ‘이용주민 현황과 일상생활’ 등을 기록 해 온 안차임(81세) 씨는 “결혼하고 서울서 살다 몸이 아파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궁이 딸린 단칸방 흙집에서 뻥튀기 팔아 아이들 키우고 살았다”며 “오일장이 없어졌어도 혹시나 하고 갖고 있던 뻥튀기 기계를 작년에야 정리했다”고 한다. 동원리가 고향인 안 씨는 “큰 수술을 하고 살아난 경험을 겪다 보니 이웃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초대 문평면 적십자봉사회장을 맡았다”고.. 안 씨의 배우자는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나승언(85세) 씨다.

 

▲ 안국천과 지방도825호선이 만나는 지점에 돌깁투사 정동근 선생 추모비가 우뚝 서 있다.

 

신안마을 버스승강장 옆 문평공업사 이종택(63세) 씨는 “20대 때 경기도 의정부에서 농기계 수리회사에 근무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집터에 가게를 열고 아버지와 함께 일했다”며 “소리를 잘 하셔서 광주mbc ‘얼씨구학당’에 출연하기도 한 아버지(이광재, 92세)가 일손을 놓고 안영마을로 들어가신 20여년 전부터 혼자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 씨의 동생 종수(56세) 씨는 나주시음악협회장을 맡고 있다.

 

“40여년간 홀시어머니를 왕비처럼 모시고 몸이 불편한 남편과 3남매 키우느라 안 해 본 일 없다”는 학교앞수퍼 정미숙(67세) 씨는 “두레박으로 물 긷고 나무하고, 잠 자는 시간을 줄여 핫도그랑 붕어빵 만들고, 방학 때는 시내 통조림공장에 일하러 다니고 휴일엔 석축쌓고 잔디 심는 산일도 해야 했다”며 “결혼하기 전까지 광주 광산구 고향에선 쌀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애지중지 컸다”고 웃어 보인다. 정 씨의 헌신적인 삶이 알려져 나주군수(1994)와 한국효도회(2005)로부터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말처럼 우연찮게 신안마을과 인연이 됐다는 문화전자 김용환(72세) 씨는 “군복무 마치고 친구네집 놀러왔다 가게를 열게 된 게 1978년 11월”이라며 “군에 가기 전에 배웠던 전자 기술을 이용해 ‘진공관 전축’을 조립해 팔기도 하고 각종 가전제품을 수리하며 살았다”고 한다. 일한 지 10여년 만인 1987년 현재의 건물을 지은 김 씨는 “한눈 안 팔고 열심히 일해서 은행 빚 다 갚고 나니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버렸다”고 씁쓸하게 웃음짓는다.

 

“장사하고 농사짓고 4남매 키워서 여운 거 말고 뭐 더 할 말이 있다요”라는 옛고무신집 창순자(84세) 씨는 “나이 들고 더 안 아프려고 운동하는 거 말고 아무 것도 안해”라며 ‘더 할 말 없다’며 손사레를 친다.

 

함평군에서 나주 거쳐 광주로 가는 시외버스가 멈춰섰던 문평정류소 김동환(81세) 씨는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 함평군 나산면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은 지 40년이 넘었다”며 “20여년 전 오일장이 문을 닫고 버스 노선도 끊어지고 택배가 들어오면서 화물 일도 없다”고 한다.

 

“전국을 다니며 20여년간 건설현장에서 용접 일하고 택시도 했다”는 문평철물건재 강정원(63세) 씨는 “1998년 선배 권유로 빈 가게를 인수했다”며 “길 건너 식당이 있을 때만 해도 살만 했는데, 지금은 손님보다 가게가 더 많다”고 한다. 인접한 오룡1리가 탯자리인 강 씨는 “살아보니 고향만 한 곳이 없다”며 밝게 웃는다.

 

광주광역시 서구가 고향으로 무심한 듯 ‘도시남자’ 분위기가 드러나는 김재진(59세) 씨는 “문평IC가 설치돼 발전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마을을 가로지르는 지방도 825호선 우회도로 개설은 주민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 신안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면 거북선을 형상화한 ‘#문평 즐겨찾기’를 만날 수 있다.

 

“아이 낳고 몸조리 하러 친정에 왔다 부모님이 50년 넘게 하던 방앗간을 이어받은 지 27년째”라는 봉미숙(58세) 씨는 “문평장은 우시장이 섰던 큰 장으로 어려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고무줄놀이며 돌짓기(공기놀이)하던 놀이터이기도 했다”며 “아버지는 살림이 어려운 옆집을 위해 기름짜는 기계를 외상으로 얻어줘 참기름집을 열게 하는 등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살았다”고 옛일을 떠올린다.

 

대도리 대도저수지에서 시작해 고막원천에 합류하는 안곡천이 신안마을을 위아래로 나눠 아랫쪽은 면행정복지센터와 농협, 우체국 등 공공기관이 있고 위쪽은 빈 터만 남은 오일장을 중심으로 상가가 형성돼 있다. 신안마을을 동서로 나눈 지방도 825호선의 우회도로가 개설되고 난 뒤 사람사는 맛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벌 키우는 사람만이 진짜 꿀을 맛볼 수 있다”

 

문평면 안곡2리 신안마을 박인우(59세) 이장은 “지인이 선물한 벌통 2봉을 밑천 삼아 취미로 키우기 시작해 200봉이 됐다”며 “아카시아와 찔레꽃, 해오라기 등이 동시에 피는 문평 벌꿀 맛은 여느 꿀에 비할 바 없이 가장 맛이 좋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각종 자재값은 내릴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는데 꿀 가격은 20년 전 그대로”라는 박 이장은 “벌통 앞에 있으면 시간 가는 것마저 잊을 만큼 재미로 키우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과 가족들끼리만 나눠 먹는다”고 덧붙인다.

 

문평이발소를 운영하는 박 이장은 “16세 무렵 산호리 남산마을에서 형과 함께 이발 일을 시작해 10여년 만에 이곳으로 나왔다”며 “형님이 무리해서 짓다 부도를 맞게 된 가게를 넘겨받아 혼자 일하기 시작했는데, 장날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을만큼 손님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바쁘게 살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박 이장은 “형제처럼 지내던 지인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은행 보증을 서는 바람에 가진 걸 모두 날리고 이 집만 간신히 건졌다”며 “80년대 1억원이면 집이 열채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인데 매년 두 번씩 이자만 감당하기도 힘에 부쳤다”고 옛 기억을 떠올린다.

 

“이발 일이 싫어 도시로 탈출하기도 했다”는 박 이장은 “서울의 성수동에서 공장생활을 하고 경북 구미의 전자회사에 다니다 집사람을 만났다”며 “긴 생머리의 매력적인 첫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순진한 눈꼬리가 춤을 춘다. “남매 모두 자리 잡고 결혼까지 했으니 우리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박 이장은 “쉬는 날이면 집사람과 산에 다니는 게 가장 큰 낙”이라며 밝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