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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웅 국장 |
며칠 전 술자리에서다. 몇 잔 술이 오가자, 뒷담화가 시작된다. 지역 정치인을 씹다가, 지역 오피니언을 씹다가, 지역 시민사회단체(단체장 등)를 씹다가, 종착점은 지역 언론이었다. 자리에 나 외에 위의 세 집단 관련 인사는 없어 추상적 씹힘이었는데 지역 언론은 구체적 씹힘을 당했다. 나에 관한 직접적 씹힘은 아니었지만, 듣는 놈 모골이 송연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처지가 아니었으면, 사단이 나도 큰 사단이 날 입에 담기 거북한 원색적 비난이 줄을 잇더니 “나주에도 기자가 있느냐” 묻는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여기 있다”라고 했더니 “맞아 있네”라며 다들 웃는다.
“나주에도 기자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책대로의 기자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기자라도 나주에 존재하느냐는 비아냥이 역력했다. 법보다 ‘윤리’가 중요한 곳이 언론 직군으로 꼽힌다. 언론인은 다른 직군에 비해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대리운전하고 집에 오는데 대리 기사가 나를 알아본다. “나주투데이 이철웅 국장님 아니세요” 한다. 죄지은 것 없는데, 바로 전 술자리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했다. ‘주적심허’(做賊心虛)였을까.
술자리에서 말이 어디까지가 펙트이고, ‘카더라’인지 나로서는 구분할 수 없지만 심각했다. 특정 언론인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안 주면 씹고, 주면 조용하다”고 했다. 해석하자면 이권(사업)을 챙겨주면 나주시장에게 호의적이고 뜸하면 나주시(시장)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한다는 것이다. “기자인 나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그리 속속들이 아느냐”는 나의 너스레에 “‘인구에 회자한 지’ 오래다”고 한다. “이외에도 기사 한 꼭지도 가뭄에 콩나듯 하는 기자가 언론으로 호가호위하면서 양두구육 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며 “부끄러움을 상실한 기자가 수두룩하다”고 못 박는다.
뒷담화는 계속됐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때지어 다니면서 사이비 짓을 일삼는 기자들도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사이비 짓)까지 들이민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느냐”는 말에 ‘초록은 동색’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노코멘트”하란다.
이들의 짓은 지역이 사회적 관계가 좁은 것을 이용, 보도로 지역에 영향을 주는 파급력이 크다는 이유로 권력화되어 이를 악용하는 사례다. 일부 기자의 일탈이 자칫 지역 전체 기자에 대한 보편적 언어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기자 최규장을 소환한다. 나는 지역 언론인에 부정적 시각이 있을 때마다 최규장을 몇 번 언급했다. 내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최규장 기자처럼 ‘참 언론인’의 DNA가 뼛속까지 스민 기자는 없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책 <언론인의 사계>를 통해 본 그는 그랬다.
최규장은 1998년 출간한 <언론인의 사계>에서 “물가에 가지 않으면 목을 축일 수 없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익사할 수 있다.”… “(기자)신념을 바꾸기보다 (기자)직업을 바꾼 것이다. 기자는 나에게 천직이었다. 직업 정신을 잃었을 때 직업인으로 나는 이미 죽은 것이다. 살기 위해, 보도하지 않고 보도하기 위해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신념을 바꾸기보다는 직업을 바꿨다”는 권력과의 ‘M&A’에 대한 솔직한 변이 나에겐 언제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익 추구를 위해 언론의 탈을 쓰고 권력에 아부할 수 없어 기자로서의 신념을 바꾸기보다는 아예 직업을 바꿨다는 기자 최규장.
최규장은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하거나 헌신한 기자가 아니다. 되레 최규장은 기자를 하다가 박정희 유신정권에 참여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말을 어떻게 포장하던 기자 하다가 정‧관계에 발을 디뎠으면(그것도 유신정권) 그걸로 끝이거나 불명예로 인식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 시각이다. 최규장의 경우는 정‧관계로 옮겨간 타 언론인과의 전형과는 크게 동떨어진다는 점이다. 그에게 ‘M&A’의 목표가 사익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변절’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지 않았다. 자신의 ‘언론 사계(四季)’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신선하다. 고인이 된 지 오래지만, “(기자)신념을 바꾸기보다 (기자)직업을 바꾼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지금도 귓전에 울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아예 직업을 바꿈으로써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의 자존심을 지켜줬고, 기자의 자존심도 지켰다.
“붓을 꺾을 용기를 내기에는 살길이 막막했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기에는 청춘이 가련했다”는 말에서는 ‘먹고사니즘’(생존주의)과 기자로서의 사명 의식이 충돌한 처절함도 느껴진다.
기자도 글 써서 밥 벌어먹는 존재다. 항산(恒産)이 없이는 항심(恒心)이 없듯이 생활고에 허덕이는 기자들에게 먹고사니즘은 어쩌면 헤어나기 힘든 현실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려는 고민과 함께 실천하는 것이 기자다.
우리는 언론을 ‘사회적 공기’(公器) 라하고, 기자=언론인은 공익을 대표해서 존재하는 ‘공복’(公僕)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에 부응할 자신이 없으면 최규장의 말처럼 신념을 바꾸기보다 직업을 바꿔야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빈다’(산다)는 것은 문학인의 화려한 수사에 불과하다. 누구나 삶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저기 더러운 오물이 섞여 있다. 기자도 인간인 이상 그렇다.
다만 기자로서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면서 언론을 참칭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부끄러움이다. 공정과 정의를 아무리 외쳐도 모두가 빈껍데기가 되어 허공을 맴돌 뿐 언론은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둘러대며 자기변명 하겠지만 기자라는 직업이 먹거리 수단일 수는 없다.
‘먹고사니즘’(생존주의), 생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씁쓸한 현실이 투영된 신조어다. 당장의 배고픔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먹고사니즘과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지역 저널리즘 사이에서 방황하는 ‘기자님들’, 누군가가 우리를 일컬어 ‘사이비’라 한들 딱히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할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