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용식 수필가·공학박사

‘따이공’들 삶의 현장인 평택항에 가보기로 한다. 운전석 옆자리에서 그는 그 시절로 젖어 드는지 말수가 적어진다. 10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재촉만 할 뿐. ‘따이공’시절 궁금했던 일들을 계속 물으며 그의 입을 열게 한다.

“가장 돈 되는 아이템은 뭐야?”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마약이지. 스스로 무덤 파는 일이라 생각도 안 해 봤어. 다음이 귀금속인데 초기 자금이 많이 들고 통관이 까다로워.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남들처럼 보따리 심부름만 했지. 시간이 지나니 요령이 생기더라. 주로 값비싼 밍크코트 같은 의류 등을 했어. 한 달에 대 여섯 번 나갔다 오면 700-1,000만 원 정도 돼. 괜찮았지” 그이 말대로 그 정도 수입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이야. ‘따이공’ 생활 2년 정도 했을 땐가? 평택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 신고받은 경찰이 지갑을 돌려주며 옛날에 무슨 일 했는지 자세히 묻더라고. 그 지갑에 한참 잘 나갈 때 만든 AMERICAN EXPRESS 금장 카드를 기념으로 가지고 다녔거든. 아마 그 카드 소지할 정도면 한동안 잘 나간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이야. 측은지심이었는지 그날 이후 많은 도움을 주더라고. 그때부터 돈이 되는 일에 손을 댔지. 내게 뒷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따이공’들로 구성된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감사라는 직책을 주더라. 여기 임원이 되면 그들만이 아는 혜택이 많아.”

“괜찮은 벌이인데 왜 그만뒀어?” “겉으로는 그렇지만 말하기 곤란한 기회비용도 많이 들어. 통관도 까다로워지면서 뒤를 봐 줬던 기관원들도 몸을 사리더라. 크게 한탕 하려고 밍크코트를 대량으로 들여오다 걸렸어. 그 바닥 용어로 ‘열쇠 채운다’라고 하는데 들여오는 물품에 세관원이 열쇠고리를 채우면 빼도 박도 못해. 관세법 위반으로 걸려 물건 뺏기고, 벌금 물고…. 그때부터 요주의 감시 대상이 되니 피할 수가 없는 거야. 사실 그동안 항상 죄지으며 산다는 부담감도 컸다.” ‘따이공’ 생활 10년 만에 평택항을 떠난다.

평택항에 도착했다. 텅 빈 주차장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가을 햇볕도 한가롭다. 10시 30분, 엔타이 항에서 출발한 배가 도착했는지 보따리상들이 띄엄띄엄 수속을 마치고 나온다. 카트에 실은 짐의 부피가 의외로 작다. 기다리던 거래상들이 물건을 받아 화물차에 싣는다. 23,000톤급 배가 입항했는데 승객은 47명뿐이라고 들었다. 컨테이너를 제외하면 승객보다 승무원 숫자가 더 많지 않았을까. 대합실 안을 돌아보니 사람 구경이 힘들다. 세관원만 폐항(廢港)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몇몇 거래상까지 떠나버린 빈 주차장이 더 넓어 보이고 황량하다.

친구와 함께 ‘따이공’ 생활을 했던 두 분을 만났다. 지금은 배는 타지 않고 ‘따이공’들이 들여오는 물건들을 받아 국내에 공급해주는 거래상을 하는 분들이다. 코로나 펜데믹은 배가 침몰하듯 평택항을 가라앉혔다. 코로나 이전에는 1,000명 가까운 ‘따이공’들이 주차장에 바글바글했고 근처 식당은 최고의 호황이었단다. 세관의 통관 무게도 점점 그들의 삶을 옥죄어 왔다. 80kg 기준을 벗어나도 못 본 척해주더니 60kg으로 강화되고 지금은 40kg으로 줄어들었단다. 이마저도 철저히 감시하여 이제 평택항은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평택항은 30여 년 그들의 삶터였는데. 이제 한국 사람들은 다른 생업을 찾아 떠나고 중국 조선족들만 운반책 역할을 한단다. 그도 보따리는 들고 들어오지만, 15일 법적 체류 기간에 국내 농어촌에서 일당벌이한 후, 다시 돌아가는 ‘따이공’ 아닌 ‘따이공’들이다.

거래상의 창고를 찾아갔다. 5kg 단위로 들어온 고추, 메밀, 콩, 참깨, 녹두 등 8개 품목을 40kg으로 재포장하여 국내 수요자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이 많이 줄었단다.

그분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소주가 각 2병이다. 친구가 나를 작가라고 소개해서인지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들려준다. 각자 필요로 해서 맺어진 선상 부부, 뱀탕에 얽힌 이야기,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알력다툼, 중국 도착해서 낮 동안 저지르고(?) 다닌 일들까지 무용담처럼 쏟아 놓는다. 살아남기 위해 견디고 버틴 이야기들이다. 밑바닥에 흐르는 끼리끼리의 끈적한 의리도 느껴진다. 서로의 약점들을 공유한 동질감이었을까?

친구는 오고 가는 배 안에서 책 읽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지난 일과 현재 상황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면서 쉼이었다고. 절박하고 고단한 그들의 색다른 세계를 소설로 쓰고 싶어진다. 열외지대 같은 곳에서 투명인간처럼 살아온 그들의 삶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인간이 극한으로 몰리면 어떤 본능이 드러날까 궁금하다.

“‘따이공’ 그만두고 뭘 했지?” “방구석에만 있는 아빠가 답답해 보였던지 뭐라도 배우라고 하더라. 주민센터에서 컴퓨터 초보부터 시작했지. 알짜 컴맹도 2년 가까이 배우니 웬만한 서류작성이나 편집은 기본으로 할 수 있게 되더라.” “2년씩이나?” “할 일 없으니 그냥 다녔지 뭐.” 딸내미가 다시 어느 회사에 입사원서 내보라고 해서 시킨 대로 했지. 면접 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본인이 직접 작성했는지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내일부터 근무할 수 있느냐고 하더라. 얼씨구나 했지. 오피스텔 관리하는 관리소장 일이다. 2011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째 되어 가구나.”

가족에게 꿈이 생겼다고 했다. 아내가 병자나 약자 도와주기를 좋아해 노인주간 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싶어 한단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지금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딸은 사회복지사 자격을, 한의사 딸이 있으니 보호센터 설립 요건을 갖췄다고 한다.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올 것이란다. 자기는 노인들 발걸음 노릇을 하는 운전만 하면 된다고.

2008년 세례 받은 이후 주일예배는 빠지지 않는단다. 그의 아내가 영적 체험을 받았다며 지금의 자기 생활도 하느님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들 부부는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두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고 했다.

“오늘도 무사히, 오늘도 즐겁게, 우리의 꿈은 이루어진다.”

그 가족의 꿈을 응원한다.